‘아기곰’ 임성재(22)가 골프 역사에 남을 새 이정표를 향해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1500만달러(약 178억원)에 달하는 우승 상금이 걸려 있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챔피언십에서 ‘데일리 베스트’를 기록하며 우승 경쟁에 불을 댕겼다. 세계 랭킹 2위 욘 람(26·스페인), 지난해 우승자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 등 강호들을 선두권에서 끌어내린 강렬한 상승세다.
버디 7·보기 1개…‘데일리 베스트’
임성재는 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레이크GC(파70·7319야드)에서 열린 대회 2라운드를 버디 7개, 보기 1개로 막았다. 6언더파 64타. 64타는 이날 출전한 30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이다. 중간 합계 12언더파를 적어낸 임성재는 선두 더스틴 존슨(13언더파)에 1타 뒤진 단독 2위로 반환점을 돌았다.전반에 버디 3개, 보기 1개로 2타를 줄인 임성재는 후반에 버디만 4개를 잡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순위를 최고점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아이언맨’ 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절정의 샷감을 선보였다. 6번홀(파5), 10번홀(파4), 15번홀(파3), 16번홀(파4)에서 아이언 샷을 핀 옆 2m 이내에 붙이며 버디를 낚았다. 18번홀(파5)에선 2온 이후 시도한 11m 이글 퍼트까지 집어넣을 뻔했다. 1라운드에서 42.86%에 그쳤던 페어웨이 안착률을 2라운드에서 71.43%로 끌어올렸고, 그린 적중률도 88.89%에 달하는 등 샷에 불이 붙었다. 임성재는 “티샷이 일관성 있게 나와 버디 기회를 많이 잡았다”고 말했다.
이날 5타를 덜어낸 젠더 셔펠레(26)가 11언더파 3위, 저스틴 토머스(27·이상 미국)가 4위(10언더파)로 2라운드를 마쳤다. 샷이 흔들리며 이날 4타를 잃은 욘 람은 9언더파 공동 5위, 18번홀에서 ‘토핑’을 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한 매킬로이는 전날보다 1타를 잃어 8언더파 공동 8위로 미끄러졌다.
아시아 골퍼 최초 ‘페덱스챔피언’ 도전
투어챔피언십은 2019년부터 선수들이 지난 1년간 대회에서 획득한 페덱스컵 포인트에 따라 보너스 타수를 받고 대회에 참여한다. 최종전 우승자가 자동으로 페덱스컵 챔피언이 되도록 설계한 일종의 ‘리셋’ 방식이다. 2018년 타이거 우즈(45)가 이 대회에서 우승하고도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우승을 놓치자 최종전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의견을 반영했다. 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난 후의 페덱스랭킹 순으로 최고 10언더파(1위), 최저 이븐파(30위)의 보너스 타수를 부여받는다. 이에 따라 올해 페덱스컵 랭킹 1위였던 존슨은 10언더파로, 9위였던 임성재는 4언더파로 대회를 시작했다.임성재가 투어챔피언십을 제패할 가능성은 꽤 높다는 게 전문가들 평이다. 운 좋게 얻어걸린 성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콘페리투어(2부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신인왕과 올해의 선수를 ‘싹쓸이’한 임성재는 지난해에는 정규투어 신인왕에 올랐다.
지난 1월 혼다클래식에서 정규투어 첫 승을 신고한 그는 올해 출전한 25경기에서 일곱 번이나 ‘톱10’에 들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컨디션도 최상이다. 이틀간 8타를 줄인 것은 대회 출전 선수 가운데 가장 좋으면서도 안정적인 성적이다. 이 덕분에 대회 시작 전 6타 차나 났던 1위 존스와의 격차도 1타 차로 좁혀졌다.
임성재는 “남은 대회 기간 컨디션을 유지하면 우승 기회가 올 것”이라며 “우승상금 1500만달러를 받으면 미국에 집을 사고 남는 돈은 미래를 위해 저축할 것”이라고 했다.
임성재가 우승까지 내쳐 달릴 경우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 최초로 페덱스컵 챔피언이란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지금까지 최종전에서 거둔 한국인 최고 성적은 최경주가 2011년 투어챔피언십에서 기록한 공동 3위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