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과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배임 혐의는 6월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만 해도 없었지만 이날 새로 포함됐다. 기소된 인원은 이 부회장을 포함해 총 11명이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분식 회계, 거짓 정보 유포, 주요 주주 매수 등 조직적인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반면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증거와 법리에 기반하지 않은 수사팀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처음부터 이 부회장 기소를 목표로 정해놓고 수사했다”고 비판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의 기소가 ‘리더십 공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특검이 삼성에 칼을 겨눈 2016년 11월부터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특검에 기소된 뒤 재판에 출석한 횟수도 70여 회에 달한다. 국정농단 사건 1심을 기준으로 사흘에 한 번꼴로, 매번 10시간가량 재판정에 서야 했다.
삼성 관계자는 “재판 준비와 법정 출석 시간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이 경영 현안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중요한 결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배임죄까지 기습 추가한 檢 "삼성물산 불법 합병 증거 있다"
1년9개월 끌다가 기소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와 산업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끝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1일 재판에 넘겼다. 오히려 이 부회장의 공소장에는 지난 6월 구속영장 청구서엔 담기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 혐의가 추가됐다. 당초 수사심의위 취지를 감안해 기소 대상자를 최소화할 것이란 관측도 빗나갔다. 이 부회장을 포함해 총 11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1년9개월 끌다가 기소
영장청구 때 없었던 ‘배임’ 추가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시세조종)과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세 가지다.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법행위가 동원됐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한 쪽으로 합병을 진행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시세를 조종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불법을 은폐하고 사후적으로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도 저질렀다고 봤다.검찰은 “‘빙산의 일각(회계부정)’에서 출발한 검찰 수사가 단서를 차근차근 찾아가며 수면 아래 감춰진 ‘빙산(불법합병)’의 실체를 찾아낸 것”이라고 자평했다. 검찰은 또 “이 부회장의 관여를 인정할 수 있는 문건과 진술을 다수 확보했다”고 했지만, 검찰이 이날 발표한 주요 공소사실에 이 부회장의 지시 여부를 입증할 ‘스모킹건’은 담기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이 부회장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업무상 배임 혐의의 법정형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한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는 “배임은 범죄 성립 요건이 모호한 만큼 검찰이 지난 6월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확실한 혐의’만 일단 적용하고자 배임 혐의를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재판에서 배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실형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내다봤다.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결과적으로는 삼성물산 주주들이 합병으로 이득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불법 의도가 입증된다면 배임죄는 성립된다”며 “결국 양사의 합병이 경영상 필요에 따른 합법적 결과물이었는지 여부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배임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무죄율이 두 배 이상 높은 편”이라며 “검찰이 이날 기소 근거로 제시한 ‘프로젝트G 문건(이 부회장 승계 플랜)’과 ‘최서원 대법 판결’은 구속심사 때와 수사심의위에도 제시됐지만 문제가 없다고 본 사항으로 검찰의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기소 과정에 느닷없이 배임죄를 추가한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수사심의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재용 재판, 최소 3년 이상 이어질 듯
조만간 법원은 이 부회장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를 배정하고 이르면 이달 내 1차 공판준비기일(검찰과 변호인단이 재판 쟁점사항 등을 정리하는 절차)을 열 것으로 보인다. 정식 공판이 시작되면 이 부회장은 주 2~3회씩 최소 수년간 법정에 출석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 ‘국정농단 의혹 사건’으로도 4년째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은 또다른 재판을 받게 됐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국정농단 재판이 만 3년 반을 넘어가고 있으니 이번 사건도 최소 그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검찰의 무리한 기업수사 관행 등도 도마에 올랐다.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 이후 최종 처분이 나오기까지 두 달 넘게 걸렸다. 검찰은 “지난 두 달 동안 부장검사 회의를 열고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는 등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는 절차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수사심의위 의견을 수용하지 않기 위한 ‘명분 찾기’를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수사규칙에 따르면 검찰은 강제수사가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서 수사해야 하며, 수사가 부당하게 장기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1년9개월 동안 삼성 관계자 등 300명가량을 860여 차례 조사했다. 이날 제출된 수사 기록만 약 21만4000쪽 분량이다.
이인혁/안효주/송형석/남정민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