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를 주식시장에서 ‘개미’라고 부른다. 곤충럼 숫자가 많고, 근면하게 주식을 사고 팔며 발버둥치지만 작은 개별규모 탓에 외국인과 기관의 집중공세 앞에 손쉽게 각개격파 당하기 때문에 붙은 호칭이다. 3월의 급락장을 틈타 개인들이 11조원어치를 순매수할 때도 한 펀드매니저는 “시장은 많은 개미를 태우고 올라가지 않는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급락 이후 약 5개월이 지났다. 개미들은 아직도 증시에 남아있다. 오히려 이들은 더욱 커졌고, 보다 성실해졌다. 이달들어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사상최초로 30조원을 넘어섰다. 그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개인투자자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거래의 70.7%가, 코스닥시장에서는 88.4% 개미의 손에 이뤄진다. 이제는 개미를 하나의 세력을 넘어, ‘개미 군단’이라 불러야 한다는 평가다.
○매일 30조원이 거래...개인 비중 88%
올들어 국내증시(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에서는 하루에 평균 20조2974억원어치 주식이 거래된다. 이는 지난해(9조2990억원)보다 118.27% 증가한 수준이다. 이달들어서 추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지난 24일을 기준으로 8월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30조5233억원. 일단위 거래대금의 사상 최고기록은 지난 18일의 33조4343억원인데, 이 기록은 이번 달에만 6번 경신됐다.
사상 최대로 활발한 시장을 개미들은 분주하게 누비고 있다. 지난해 8월 당시 개인투자자의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거래비중은 각각 46%, 82%였다. 이달들어(24일 기준) 그 수치는 각각 70.7%, 88.4%까지 늘어났다. 전통적으로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았던 코스닥시장보다 유가증권시장에서의 비중 급등이 눈길을 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누적순매수 기록만 보면 4월 이후로 시장의 개인들이 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활발하게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며 "급등한 종목을 차익실현하고 새로운 주도주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시장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세추종에서 기다리는 투자로
투자전략도 달라졌다. 외국인과 기관 등 이른바 '주포'가 주가를 끌어올릴 중소형주에 올라타기보다는 실적개선이 기대되는 시장 주도 대형주에 탑승했다. 지난해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20개 종목 가운데 7개가 코스닥시장 종목이었다. 대북테마주로 분류되는 아난티(3538억 순매수)가 전체 3위에 올랐다. 올해 개인의 상위 20개 종목 가운데 코스닥 종목은 코스닥 시가총액 1,2위인 셀트리온헬스케어, 씨젠 단 두 종목에 불과하다.
개인비중이 압도적인 코스닥시장에서는 아예 개인들이 가격을 주도하는 위치까지 올랐다. 최재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순환매 장세가 이어진 6월 이후 성과를 보면 코스닥시장의 개인들은 상위 20개 종목에서 평균 64%의 수익을 올린 반면 기관과 외국인은 각각 38.6%, 22.8%를 기록했다"며 "코로나19 수혜가 기대되는 종목으로 매수세를 집중시키면서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개인들이 단기차익을 기대하며 테마주 등 중소형주 중심의 투자를 이어갔다면 올해 증시에 진입한 동학개미들은 재무건전성이 뛰어난 우량 종목 중심의 투자를 선보인다"며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도 개인들의 투자패턴이 이전보다 정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개미들이 코스피 구해냈다... 여의도도 인정
개인들의 증시 주도 능력에 대한 분석도 등장했다. 26일 키움증권은 '개인 투자자 성과 및 시중 유동성 중간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4월 이후 반등장에서 개인의 기여도와 수익률을 분석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지난 3월 909.09포인트가 올랐다. 이 가운데 약 370포인트를 개인이 순매수한 상위 50개 종목이 기여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수 상위종목이 기록한 기여도(220포인트, 300포인트)를 압도한다.
금융당국도 개인투자자를 응원하고 나섰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4월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우리 기업에 대한 애정과 주식시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참여해준 투자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증시의 버팀목으로 작용한 개미들에 감사를 표했다.
○개인이 코스피 2850 이끈다 VS 외국인 없이는 불확실성 확대
장기적인 전망을 두고는 이견이 엇갈린다. 삼성증권은 이달들어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전망을 2850포인트로 상향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반복된 투자 실패와 중장기 증시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섰던 올해 '동학개미운동'의 성공 경험은 개인 자금의 증시 유입을 지속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며 "기업이익의 급속한 정상화와 함께 개인자금의 머니무브가 증시를 환골탈태로 이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매도 금지조치의 연장도 개인투자자의 투자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관론도 존재한다. 최 연구원은 "개인들의 예탁금이 52조원을 돌파하는 등 유동성 장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재확산 등 불확실성 요인이 상존해 외국인 매수세의 유입이 지연되고 있다"며 "신용융자 잔고 역시 15조8000억원에 달해 증시의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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