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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온라인 도박에 빠진 '왕서방'…코로나에 심해진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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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한 카지노. 부스마다 화려하게 단장한 여성 딜러들이 앉아 있다. 그러나 고객은 보이지 않는다. 고객들은 수천㎞ 떨어진 중국의 자기 집에서 PC로 돈을 건다. 한 판당 베팅은 5~100달러 수준. 딜러와 고객은 웹캠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한몫 잡은 고객은 두둑한 팁을 송금해 주기도 한다.

중국에는 '도박과 마약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인식이 넓게 깔려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건국 당시부터 도박을 엄격하게 금지해 왔다. 자국민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도박하는 것도 불법이다. 온라인 도박도 엄연히 법 위반이다.

그럼에도 필리핀의 온라인 도박업체들이 우회 수단을 동원해 중국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중국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6일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집에 격리됐던 많은 이들이 온라인 도박장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은 지난 4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도박이 급증했으며, 도박 사이트들이 중국 시민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산하 경제참고보에 따르면 중국인이 지난해 해외 온라인 도박에 쓴 돈이 1조위안(약 170조원)에 달하며, 부분이 필리핀 업체들로 갔다. 한 필리핀 도박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는 하루에 1억3000만달러 규모의 돈이 필리핀 카지노에 들어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도박은 현금을 들고 가서 칩으로 바꾸는 실제 도박장과 달리 신용카드로 가상의 칩을 사기 때문에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그만큼 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도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필리핀이 온라인 도박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은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이후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외국인 대상 온라인 도박장(POGO·Philippines offshore gaming operator) 면허 발급 권한을 필리핀오락게임공사(PAGCOR)에 위임하고, PAGCOR 회장에 자신의 측근인 안드레아 도밍고를 임명했다.

PAGCOR는 이후 60여 POGO에 면허 발급해 줬다. 필리핀에서도 무면허 도박은 불법이다. 중국처럼 도박이 전면 금지된 국가 국민을 온라인 도박장으로 유치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하지만 POGO 들은 다양한 우회로를 통해 중국 고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PAGCOR 대변인은 "중국어를 쓰는 고객들도 일부 있지만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 시민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온라인 도박 업체들이 성행하는 국가에 끊임없이 중단 압박을 넣어왔다. 캄보디아는 지난해 말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 중국인 접속을 차단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필리핀이 POGO 사업을 용인하는 것은 고용과 세수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필리핀 정부가 POGO 면허 발급과 관련 규제로 벌어들인 수입은 74억페소(약 1800억원)로 집계됐다. POGO와 그 종사자에게서 걷은 세금은 240억페소(약 5800억원)에 달한다. 필리핀 정부는 관련 수입과 세금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POGO 관련 종사자는 필리핀 사람만 15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POGO가 중국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용한 중국 사람도 공식적으로 13만명을 넘는다.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란 관측이다.

POGO가 빈 상가나 주차장 등에 카지노를 차리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도 일조하는 것으로 관련 업계에선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도박 악습이 더 심해졌다고 보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 공안은 2월부터 본격 감독에 착수해 4개월 동안 2만7000여개 해외송금 계좌를 폐쇄하기도 했다. 또 불법 온라인 도박장이 2019년말 1만개 이상에서 현재 1000개 미만으로 줄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필리핀 POGO들이 단속에 걸리지 않는 우회 통로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어 실제 단속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중국에서 해외 송금은 1년에 5만달러로 제한돼 있지만, POGO는 수만개의 차명계좌를 동원, 소액 송금으로 위장해 법망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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