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슈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독재자가 TV에 나와 연설한다. 그의 얼굴은 한입 베어먹은 듯한 사과 모양이고, 머리에는 벌레가 자라고 있다. 이어 한 전사가 달려와 TV 앞에 선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해머를 힘껏 던져 TV를 부숴버린다.
미국 게임기업 에픽게임즈가 13일(현지시간) 공개한 풍자 영상이다. 공격 대상은 미 정보기술(IT) 공룡기업인 애플이다. 한입 먹은 사과 모양인 애플 로고와 독재자의 얼굴이 닮은 이유다. 이 영상의 마지막에는 “우리는 애플 앱스토어의 독점에 저항한다”며 “애플과의 싸움에 동참해달라”는 호소가 나온다. 에픽게임즈는 같은 이유로 구글과의 전쟁에도 들어갔다.
전면전 치닫는 갈등
앱 관련 수수료를 둘러싼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에픽게임즈는 애플이 거둬가는 앱 수수료를 회피하기 위해 자체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애플은 수수료를 내지 않으려는 ‘꼼수’라며 에픽게임즈의 총쏘기 게임인 ‘포트나이트’를 앱스토어에서 퇴출시켰다. 구글도 같은 이유로 플레이스토어에서 포트나이트를 삭제했다. 에픽게임즈는 “부당한 처분”이라고 반발하며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에 나섰다.에픽게임즈는 애플과 구글의 결제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는 ‘인 게임’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게임 이용자들이 애플과 구글의 시스템을 이용해 결제하면 이 중 30%가 애플과 구글에 수수료로 들어간다. 에픽게임즈의 자체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아지면 애플과 구글의 수수료 수입은 줄어든다. 에픽게임즈는 자체 결제 시스템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20% 할인 혜택을 내놓기도 했다.
애플과 구글이 포트나이트를 퇴출시키자 에픽게임즈는 두 회사를 상대로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에픽게임즈는 소장에서 “앱스토어와 이용자 결제에 대한 통제는 반(反)경쟁”이라며 “앱스토어와 관련한 애플의 잘못된 관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소송”이라고 주장했다. 또 “애플은 과거에는 시장과 맞서 싸웠을지 몰라도, 이제는 시장을 통제하고 경쟁을 막고 혁신을 방해하는 거인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커져가는 비판의 목소리
에픽게임즈의 이번 소송 제기는 애플과 구글에 대한 ‘선전포고’로 평가된다. 애플과 구글의 앱 수수료가 과도해 결국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는 비판이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는 지난해 유럽연합(EU)에 애플의 수수료 정책에 대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수수료 부담 때문에 애플 음원 서비스인 애플뮤직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앱스토어의 ‘통행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구글과 애플 중심의 유통 플랫폼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2018년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의 안드로이드 버전을 구글플레이에서 유통하지 않았다. 대신 홈페이지에서 게임 설치 파일을 따로 배포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사용자들이 앱스토어 외부에서 결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포트나이트의 지난달 다운로드 횟수는 200만 건으로, 여기서 발생한 매출만 3400만달러에 달한다. 아이패드 앱 중에서는 다운로드 건수 기준 10위권, 아이폰 앱 중에선 5위권에 들었다. 사용자 수는 세계에서 7000만 명 이상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