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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칼럼] 국가가 '내 호주머니'를 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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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던 문재인 정부의 ‘태평성대’가 급반전하고 있다. 60~70%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꺼지고 있다. 외려 코로나 사태 장기화와 기록적인 수해, 부동산 등 정책 난맥상, 잇단 미투,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 등으로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4·15 총선 압승은 불과 넉 달 만에 ‘승자의 저주’로 귀결되고 있다. 176석 거대여당의 독주와 오만이 모든 문제를 오롯이 정권 책임으로 부각시키고 있어서다. 지리멸렬한 보수야당 덕에 한껏 누리던 ‘야당복(福)’도 사라졌다. 역대 정권처럼 집권 4년차의 필연적 운명인가. 뭘 해도 안 먹힌다. 23번의 부동산 대책도, 수도 이전도,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그 와중에 쏟아지는 정권 핵심인사들의 언행은 국민의 냉소와 조롱을 부르고 있다.

대부분 자초한 문제여서 추세 반전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부동산은 치명적 위기다. 국민 주거 문제는 평화·공정·정의 같은 추상의 영역도, 조국·윤미향 사태 같은 진영논리로 버틸 문제도 아니다. 모두의 삶이 걸린 피 말리는 ‘현실 그 자체’다. 이런 부동산을 그렇게 들쑤셔 놨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시장 교란 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며 경찰, 세무서, 금융감독원도 모자라 ‘부동산감독원’까지 거론한다. 하지만 시장에선 “진짜 교란 세력은 바로 정부”라고 정정한다. 세계 각국의 센 것만 모아 괴물 같은 대책을 만들어놔서다.

민심 이반도 여기서 출발한다. 어느덧 보통 사람들도 ‘국가가 내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피할 곳 없는 1주택자에게까지 세금폭탄을 투하한 것은 조선시대에 가혹하게 걷고 강제로 빼앗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중산층의 역린을 건드렸다.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사먹이고 조폭 자릿세 뜯듯 한다”는 조세저항의 외침이 드높다. ‘임대차 3법’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안 좋은 방향으로 기발하게 반목한다. 평생 집을 못 살 것 같은 20대나 패닉바잉에 나선 30~40대라면 어떤 심정일까. 윤희숙 의원의 5분 연설, “이 정부는 집값을 내릴 생각이 없다”는 주부 논객의 논리적인 비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이 정부의 최대 맹점은 대통령부터 참모들까지 경제와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은 경제원리대로 돌아간다. 어설픈 운동권 이론으로 아무리 부정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무시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취지와 미사여구로 정책을 포장한들 경제의 작동원리까지 바꿀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계속 ‘마이 웨이’만 외친다. 이렇게 실패가 뻔한 길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미국 경제학자 헨리 해즐릿의 ‘좋은 경제학’과 ‘나쁜 경제학’ 구분법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나쁜 경제학은 눈앞에 보이는 것과 정책의 직접적 결과에만 집중하지만, 좋은 경제학은 보이지 않는 것과 장기적·간접적 결과까지 포함해 연구한다.” 지금 정부 정책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다. 당장 눈에 띄는 기존 세입자, 기존 근로자에게만 집중할 뿐, 그것이 미래 세입자와 미래 근로자에게 어떤 경로로 고통을 전가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지력으로 ‘임금은 결국 소비자가 준다’ 같은 경제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단순한 정책 실패라면 잘못을 뜯어고쳐 되돌릴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진짜 문제는 반(反)시장 기조가 지나치다 못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까지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시장을 부정하고, 계약에 간섭하고, 소급적용까지 다반사가 돼간다. 사법개혁·검찰개혁이란 미명하에 벌어지는 민주주의 파괴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근대 서구 민주주의 형성 과정을 봐도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의 필연적 결과”(루트비히 폰 미제스)였다. 개인의 재산권이 부정되는 곳에선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국가가 자꾸 국민의 주머니를 털려고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는 남은 1년9개월 임기 동안 무엇을 남길까. 궁금하고 두렵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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