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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석 앉은 첫 현직 대법관 "사법농단 재판부 고생 많다고 생각"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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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로 불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은 임 전 차장이 기소된 2018년 11월부터 약 2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의 수사기록만 20만쪽으로 알려졌고 증인은 80여명이 채택돼 현재 증인신문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 11일에는 조금 특별한 증인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동원 대법관입니다. 현직 대법관이 형사재판의 증인석에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면서도 "그렇지만 누구든지 제출된 서면의 공방이 있다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1심 각하로 '윗분들 화가 많이 난' 통진당 의원 사건
이 대법관이 법정에 나온 이유는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 사이의 오랜 권한분쟁이 이어져 오던 와중 2014년 헌재는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당이 해산됐으니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수뇌부들은 "당 해산과는 별개로 의원들이 직을 상실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은 법원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2015년 1월 옛 통진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냈고, 1심 '각하', 2심 '기각' 판단이 나왔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검토중입니다.


당시 1심 판결을 선고했던 판사에 따르면 결과가 '각하'로 나오자 '윗분들이 화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각하'는 소송이 절차적 요건 등을 갖추지 못해 재판을 끝내는 것을 뜻합니다. 즉, 헌재가 내린 결정에 대해 법원이 다시 심리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진 판결이라는 겁니다. 이 소송을 통해 헌재보다 위에 서고자 했던 법원 수뇌부들로서는 탐탁지 않았을 겁니다.

법원 안팎으로 이목이 쏠렸던 지위확인 행정소송은 2심에서 '기각'으로 판결났습니다. 기각은 재판부가 판단을 거쳐 '지위확인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고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심리조차 하지 않은 각하와는 다른 판단입니다.

1심 재판장이었던 판사는 이미 임 전 차장 재판 증인으로 지난 7월 법정에 한차례 왔다 갔습니다. 다음은 2심 재판장, 바로 당시 항소심(서울고법 행정6부) 재판장을 맡았던 이 대법관의 증인신문 차례였습니다.
"통진당 문건 받은건 맞지만 판결에 영향받지 않았다"
이날 증인신문의 쟁점은 '이 대법관이 법원 수뇌부들로부터 압박이나 영향을 받고 2심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 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대법관은 딱 잘라 "그런 일 없다"고 말했습니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당시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만나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과 관련된 10쪽 내외의 법원행정처 문건을 받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일 뿐, 실제로 해당 문건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실제 8월 11일 법정에서 이뤄진 증인신문 내용>
▶검사 : 증인(이동원 대법관)은 2016년 3월 이민걸 기조실장으로부터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 문건을 전달받은 사항이 있나요?
▶증인 : 받은 건 있습니다.
▶검사 : 문건을 전달 받은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증인 : (이민걸과) 연수원때부터 친한 사이였고, 이민걸 기조실장이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해서 식사한 뒤 '한번 읽어봐라' 하면서 줬던 겁니다.
▶검사 : 당시 이민걸과 어떤 얘기 나눴나요?
▶증인 : 워낙 친하다 보니까 애들 얘기도 하고 서로 일상적인 얘기도 하고 다른 얘기 많이 하다가 그 얘기가 하나 나왔습니다. "소속 의원들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법원이 알아서 할 일인데 법원에 그와 같은 권한이 없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하는 그런 뉘앙스였습니다.

그러면서 행정처 차원에서 재판부에 문건 등을 전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실제 8월 11일 법정에서 이뤄진 증인신문 내용>
▶검사 : 이민걸의 말에 대해 증인은 뭐라고 답했나요?
▶증인 : 판사는 일단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에 제3자가 접근해오면 긴장하고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게 됩니다. 만약 얘기했더라도 '잘 검토해볼게요' 정도였을 겁니다.
▶검사 : 행정처 기조실장이 직접 증인에게 문건 전달하고 얘기하는 게 어땠나요?
▶증인 : 기분이 나빴습니다. 재판 사항인데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럽고 재판부 입장에선 불쾌했습니다.
▶검사 : 행정처가 재판에 관해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증인 : 재판은 아무도 외부에서는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특히 행정처는 오해받을 소지가 많습니다. 재판부가 행정처에 '혹시 관련된 검토자료 있어요?'라고 물을 수는 있어도 거꾸로 행정처가 하는 것은 아니에요. 모든 것은 재판부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재판부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 반대입니다.

이어 이 대법관은 재판 기일을 지정한 것도 이민걸 당시 기조실장과의 만남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통진당 사건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법원 자체 조사가 시작된 뒤에야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이 "재판거래가 아니라는 소신이 지금도 동일하냐"고 묻자 이 대법관은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가 고생 많겠다 생각"
이 대법관은 증인신문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면서 그간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임 전 처장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의 윤종섭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26기 판사입니다. 임 전 차장은 사법연수원 16기이기 때문에 10년 선배의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셈입니다. 이 대법관은 사법연수원 17기로 임 전 차장보다 한 기수 후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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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께서 중요한 사건을 하시고 고생 많으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재판은 필요한 일이고 형사재판을 해본 사람 입장에서는 누구든지 증거로 제출된 서면의 공방 있으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서 재판 증인석에 서서 이 사건의 무게 가운데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건강 유념들 하시고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동원 대법관의 마지막 법정 발언

이달 말에는 노정희 대법관도 임 전 차장의 재판 증인으로 나오게 됩니다. 주 3회까지도 진행되는 임 전 차장의 다음 재판 기일은 오는 18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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