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 정책에 따라 기업들이 중국 공장을 잇달아 빼내면서 중국 정부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5일 보도했다. 장쑤성, 산둥성 등 일본 기업들의 공장이 많은 지방정부들은 투자환경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홍콩을 이탈하는 금융사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탈중국 일본기업 70%가 의료기기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내놓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경기부양책에 리쇼어링 2200억엔(약 2조5000억원), 인접국 복귀를 뜻하는 니어쇼어링에 235억엔의 예산을 배정했다.지난달 중순까지 진행한 1차 모집에서 87개 기업에 690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57개는 일본으로, 30개는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이전할 계획이다. 1차 모집에서 관련 예산 30%가량을 쓴 일본 정부는 현재 리쇼어링 기업 2차 모집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이 리쇼어링에 힘을 준 직접적 이유는 공급망 다변화다. 지난 1~2월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적 봉쇄령을 내리면서 부품 조달에 차질을 빚자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현재까지 탈중국에 나선 기업 수는 중국에 진출한 전체 일본 기업(1만3000여개)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움직임이 중장기적 추세로 이어질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과 같은 제조업 선진국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면서 제조 역량을 쌓아온 중국의 성장 모델이 흔들릴 수 있는데다, 산업 공동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나아가 최근 미·중 갈등에 이어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과도 디커플링이 심화되면 경제적 타격을 우려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차 모집에서 중국을 떠나기로 한 일본 기업의 70%가 중국이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의료기기 기업이라는 점에 중국 정부가 주목하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2차 모집에 지원한 기업 중에도 의료기기업체가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금융정보업체 테이코쿠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2012년말 1만4394개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말에는 1만3934개, 지난해 5월말에는 1만3684개로 줄었다. 코로나19 발발 이전에 이미 탈중국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프린터 대기업인 브라더, 쿄세라, 후지제록스는 중국 공장을 일제히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샤프도 장쑤성에서 태국으로 프린터 사업부를 옮길 예정이다. 이 대기업들은 정부 보조금도 받지 않았다.
류즈뱌오 난징대 산업경제학 교수는 "지방정부들은 관할 내 외국기업이 떠나는 것을 망신이라고 보기 때문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기업 유지비를 낮추고 안전한 투자환경을 제공하는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1300여개 일본 기업이 활동 중인 산둥성은 일본해외투자공사(JETRO)와 함께 일본 정밀기계와 의료기기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홍콩 떠나는 금융사도 적극 유치
일본은 국가보안법 등 정치 불안으로 홍콩을 떠나는 금융회사들을 끌어오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은 지난달 말 기존 6개월 정도 걸리던 해외 펀드의 일본 이전 절차를 단 3일로 줄이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홍콩의 금융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비자 면제, 소득세 감면 등의 유인책도 준비하고 있다.싱가포르는 홍콩과 비슷한 영어 사용 환경, 15% 안팎의 낮은 법인세율, 안정된 사법제도 등을 내세우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예치된 외국인 예금은 6월 말 기준 618억싱가포르달러(약 54조원)로 1년 전보다 40% 급증했다.
중국에선 홍콩의 대안으로 상하이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류위안춘 인민대 부총장은 "규제 완화와 선진 금융기법 도입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