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다발성 수포와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생기기 쉽다. 진단을 받으면 항바이러스제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런 대상포진의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치매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아산병원 김성한·배성만 감염내과 교수와 윤성철 의학통계학과 교수, 김성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2002~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분석했더니 이런 내용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유럽 정신의학·임상신경과학 아카이브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대상포진으로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은 집단과 치료를 받지 않은 집단의 치매 발생률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대상포진을 치료하지 않은 집단은 치매 발생률이 대상포진을 잘 치료한 집단보다 1.3배 높았다. 대상포진을 앓았더라도 항바이러스제로 잘 치료받으면 나중에 치매에 걸릴 위험이 4분의 1 정도 줄었다.
대상포진은 어릴 때 감염된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신경 주변으로 퍼져 생기는 질환이다. 수포와 통증이 느껴지면 72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가 늦어지면 물집과 발진이 사라져도 2차 감염 및 만성 신경통이 생길 위험이 크다.
연구팀은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에 침해하는 성질 때문에 염증이 생기고 면역력이 떨어져 치매 발병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세포 속으로 들어갈 때 인슐린분해효소(IDE)와 만나 침입한다. 이 효소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주요 원인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분해한다. 연구팀은 대상포진 바이러스 때문에 이 효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대뇌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쌓일 수 있다고 했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자체가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연구팀은 신경세포가 대상포진 바이러스 감염에 대항하기 위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만들어내면서 치매가 생기는 데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이번 연구에는 2002~2013년 새로 대상포진 진단을 받은 50세 이상 환자 3만4505명의 빅데이터가 활용됐다. 환자의 84%는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았고 16%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대상포진 치료를 받은 환자 중 10년의 추적관찰 기간 새로 치매 진단을 받은 사람은 인구 1000명당 9.36명 정도다. 반면 대상포진에 걸렸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환자들은 매년 인구 1000명당 12.26명꼴로 치매 환자가 발생했다. 치료를 제대로 받은 사람보다 1.3배 정도 많았다.
대상포진을 앓았더라도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한 환자는 치매에 걸릴 위험이 24% 적었다. 사망 위험도도 39% 떨어졌다.
연구책임자인 김성한 교수는 “흔하게 생기는 대상포진과 완치 불가능한 치매의 역학적 연관성을 빅데이터를 이용해 밝혀낸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다만 두 질병의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입증한 것은 아니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대상포진에 걸렸을 땐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며 “백신을 접종하면 대상포진에 걸릴 확률을 60%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에 걸리기 쉬운 50세 이상 성인은 미리 백신을 맞는 게 좋다. 평소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수면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해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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