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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도 오기 힘든 곳인데…" 덕적도 80대 할머니 찾아간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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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자식도 오기 힘든 곳인데 여기까지 힘들게 오고 그랴.”

지난 20일, 인천 덕적도에 사는 80대 김모 할머니가 집으로 찾아온 SK텔레콤 인천 고객서비스담당 직원 이호진씨를 반기며 말했다. 20년째 2세대(2G)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는 김 할머니의 서비스 해지를 돕기 위한 방문이었다. 덕적도에는 그 흔한 휴대폰 매장이 한 곳도 없다. 정보통신(IT) 기술을 이용하기 어려운 김 할머니로서는 휴대폰 해지도, 새 휴대폰 서비스 가입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씨는 쾌속선으로 두시간 가까이 걸리는 덕적도로 직접 갔다. 김 할머니에게 서비스 종료 이유를 설명하고 새로 사용할 수 있는 3세대(3G) 휴대폰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새 전화기에서는 글자, 숫자를 크게 볼 수 있다고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마지막 배편으로 돌아오면서도 피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이 이달 6일부터 2G 서비스 종료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장비 노후화가 심각하고 부품이 부족해 정상적인 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예정보다 1년 앞당겨 2G 서비스를 종료하도록 승인했다.

1996년부터 이어져온 2G 서비스에는 긴 세월만큼이나 애틋한 사연도 많다. SK텔레콤은 직원 100여명으로 구성된 ‘찾아가는 서비스’ 팀을 구성했다. 장애나 고령으로 매장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고객, 이동통신 매장이 없는 도서산간지역에 살고 있는 고객들을 직접 찾아가 서비스 중단 배경을 설명하고 대체 서비스를 안내해준다. 25년간 제공해온 서비스를 떠나보내는 ‘이별’에 대한 예의인 셈이다.
음성·문자서비스로 휴대폰 대중화
2G는 1990년대 중반 음성통화에 문자메시지가 더해지면서 휴대폰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특히 SK텔레콤의 ‘스피드011’은 50%가 넘는 시장점유율로 지금의 업계 1위 자리를 굳히는 토대가 됐다. ‘황금 주파수’로 불리는 800MHz 주파수에 ‘011’ 번호를 선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1.8GHz 주파수를 이용하는 016, 018, 019에 비해 효율이 높아 통화품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문구는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압도적인 통화품질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010년 3세대(3G) 이동통신과 함께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면서 2G는 시장에서 빠르게 밀려났다. 2G는 당초 2021년 6월까지 유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SK텔레콤의 요청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1년 앞당겨 중단하게 됐다. KT는 2012년 3월 2G 서비스를 종료한 상태다.

SK텔레콤이 2G 종료를 시작한 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이별에 대한 예의’다. SK텔레콤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2G 이용자의 40% 이상이 20년 이상된 가입자다. 평균 가입기간은 17년에 이른다. SK텔레콤은 2G 종료 문의에 응대하기 위해 전담상담원 1200명을 배치했고 콜센터도 24시간 운영 중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지금의 SK텔레콤이 있게 해준 것은 25년 전 2G서비스부터 함께해주신 고객들”이라며 “마지막 한분까지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주신 것에 감사말씀을 드려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상통화로 손주 만나 ‘함박웃음’
‘찾아가는 서비스’팀은 전국을 누비고 있다. 포항에 사는 50대 이용자는 20년전 서비스에 가입하며 처음 구입한 단말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2G 종료를 안내받고 LTE 단말기로 바꿨지만 문제가 있었다. 기존 단말기의 단자가 고장나 연락처를 한꺼번에 옮기기 불가능한 상태였다. 시각장애가 있어 번호를 읽어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포항서비스담당 이나래씨는 그의 일터로 찾아가 400개가 넘는 연락처를 하나하나 새 단말기에 입력했다. 단말기 정리를 끝낸 이씨에게 그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먹으라”며 빵 한아름을 선물했다. 세시간 넘게 손으로 일일이 연락처를 입력해주는 모습이 너무 고마워 근처 유명 빵집에서 한시간 동안 줄을 서서 사온 빵이었다.

2G로는 하지 못했던 화상 통화에 감격한 이용자도 있다. 대전 고객서비스담당 서양지씨는 최근 90대 이용자를 찾아가 3G폰으로 교체를 도왔다. “미국에 있는 60대 딸이 올해 구순 잔치를 위해 한국에 올 예정이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입국이 취소돼 눈물을 흘리며 통화했다”는 그에게 서씨는 새 휴대폰으로 딸,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연결해줬다. 서씨는 “‘이제 세상이 좋아져서 미국에 있는 손주도 이렇게 볼 수 있다’며 함박웃음 짓는 할머니를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객별 맞춤 서비스를 추천해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군산 유통담당 직원 김광희씨는 화물차 영업을 하는 고객을 만나 진땀을 뺐다. “영업에는 전화번호가 생명이다. 기존번호를 유지하려고 2G 서비스를 이용해왔는데 번호가 010으로 바뀌면 타격이 크다”는 불만이 그 역시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고객은 2G 장비와 부품이 부족해 정상적인 서비스가 어렵다는 김씨의 설명을 납득해 주었다. 김씨는 고객의 새 스마트폰에 편리하게 화물을 배차받을 수 있는 화물·운송앱을 설치하고 이용법을 알려줬다. 또 장거리 운전으로 지방 출장이 잦은 점을 감안해 지역별 맛집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앱도 추천해줬다.

SK텔레콤은 이달 6일부터 장비 노후화가 심한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에서 2G 중단을 시작했다.오는 27일 서울을 마지막으로 모든 기지국을 닫는다. 2G 단말기로는 음성통화, 문자 등 서비스도 모두 중단된다. 한국 이동통신 대중화를 이끌었던 ‘스피드011’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3G·LTE·5G 서비스로 전환하더라도 내년 6월까지는 011, 017 번호를 쓸 수 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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