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나간 기업을 유턴시키는 리쇼어링 정책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 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케빈 스니더 맥킨지 글로벌 회장은 제조업체의 글로벌 의존성이 줄고 공급망이 단축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리쇼어링을 장기적이고 글로벌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국은 경쟁적으로 기업 유턴 정책을 시행 중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제조업 르네상스’ 기치를 내걸고 제조업 혁신, 기술인력 양성, 기업 유턴을 추진했다. 도산 위기에 몰린 자동차산업을 구제해 미시간, 오하이오 등 중부 산업 기반 붕괴를 막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역시 ‘미국 우선’ 정책을 폈다. 자국산 제품 우선 구매를 촉진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행정명령을 내렸다. 250억달러 규모의 리쇼어링 펀드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2014~2018년 연평균 482개 기업이 유턴했다.
일본은 2013년 수립된 일본재흥전략을 토대로 법인세율 인하, 국가전략특구 도입, 산업경쟁력강화법 제정 등을 통해 기업 친화적 환경을 구축했다. 2015~2017년 약 2300개 기업이 돌아왔다. 기금을 조성해 중국 진출 기업의 귀환을 지원할 계획이다.
리쇼어링 정책의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한국은 유턴 기업의 무덤’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상위 기업 1000개를 조사한 결과 리쇼어링을 검토하는 기업은 3%에 불과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노동비용과 노동규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2018년 주요 10개국의 제조업 단위 노동비용은 연평균 0.8% 하락한 반면 한국은 2.5% 상승했다. 지난 3년간 최저임금이 33% 올라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시급이 1만원을 넘는다.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무제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기업을 돌아오게 하려면 노동비용을 적절히 관리해야 하는데 최저임금 급등과 주 52시간제가 이를 막고 있는 양상이다.
노동규제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노동부문은 141개국 중 51위다. 노사협력은 130위로 최하위권이다. 임금결정의 유연성, 고용·해고 관행, 정리해고 비용도 순위가 바닥권이다. 외국인투자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가장 부담스러워한다. 최근에는 친노조 일변도 노동정책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심화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을 생산·경영·가격 규제가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로 꼽는다. 과잉규제와 노동 경직성이 혁신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같이 기업을 옥죄는 환경규제를 국제 기준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화평법의 경우 화학물질 입증 책임으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관법도 중소기업 규제 차등화 요구가 거세다.
수도권 입지 규제도 커다란 장애물이다. 유턴 기업에 중요한 것은 입지인데 지방으로 내려가면 인력 확보, 물류비, 원자재 조달 등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KOTRA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기업이 수도권을 희망한다.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관련 제도개선 내용이 일부 포함됐지만 수도권 공장총량제 같은 기본 골격에는 변화가 없다.
리쇼어링의 성패 여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달렸다. 동남아시아보다 본토 생산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규슈에 디지털카메라 공장을 건설한 캐논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년 기업의 해외 투자는 618억달러인 데 비해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233억달러에 그쳤다. OECD 회원국의 한국 투자는 전년 대비 20.6% 감소했다.
‘지옥루자재우하(知屋漏者在宇下: 집에 물이 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집안에 있다).’ 한나라 왕충의 말이다. 리쇼어링 정책은 철저히 기업의 관점에서 시행해야 한다. 덩어리 규제와 노동비용을 통제하지 못하면 기업은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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