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실종된 이달 9일 오전 고한석 전 비서실장이 시장 공관을 찾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고한석 전 실장이 공관에서 나간 지 30여분 만에 박원순 전 시장도 공관을 나섰고 그 길로 실종된 뒤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5일 공개된 CC(폐쇄회로)TV 영상에 따르면 고한석 전 실장이 9일 오전 10시10분쯤 시장 공관에서 나오는 모습이 발견됐다. 아침 일찍 공관을 방문해 박원순 전 시장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고한석 전 실장은 15일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9일 오후 1시39분 박원순 전 시장과 마지막 통화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마지막 통화를 하기 3~4시간 전 고한석 전 실장이 박원순 전 시장과 직접 만나 상의를 했을 것이란 얘기다. 고한석 전 실장이 공관에서 나온 지 약 34분 뒤인 같은날 오전 10시44분쯤 박원순 전 시장이 배낭을 메고 나오는 모습도 CCTV에 포착됐다.
서울시 관계자 입장 표명과 그간의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별보좌관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전해듣고 박원순 전 시장에게 “실수한 것 있으시냐”고 물은 시점이 실종 전날인 8일 오후 3시경이었다.
그러나 이때 박원순 전 시장은 “일정상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 정도로 임순영 젠더특보에게 답변하고 일단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전 시장은 8일 오후 7시부터 9시쯤까지 예정된 구청장들과의 만찬 일정을 소화했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시점까지도 성추행 의혹 피소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찬 일정을 마치고 공관으로 돌아온 박원순 전 시장은 오후 9시30분쯤 임순영 젠더특보 등을 불러 간단한 공관 회의를 연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때도 대책회의 수준은 아니었으며 박원순 전 시장이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언급한 뒤 회의는 금방 끝났다는 게 시 관계자 전언이다.
실종 당일인 9일 아침 일찍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미투 건으로 박원순 전 시장 신변에 중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고한석 전 실장을 비롯한 서울시 정무라인에서 알게 됐다는 것이다.
공관 회의가 열린 8일 밤과 고한석 전 실장 등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9일 아침 사이엔 박원순 전 시장을 고소한 전 비서의 경찰 조사가 있었다. 고소인 조사가 9일 오전 2시30분경 끝난 뒤, 이 내용이 박원순 전 시장 측에 전달됐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원순 전 시장은 9일 서울시청사로 출근하지 않고 공관에 머물렀다. 공관을 나선 오전 10시44분 전에 고한석 전 실장이 공관을 직접 찾은 사실이 이번에 CCTV 영상으로 확인된 것이다. 고한석 전 실장은 박원순 전 시장과의 대화나 통화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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