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은 코로나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리셴룽 총리는 경제가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총선을 조기 실시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한국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것도 참고했을 것이다. 그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싱가포르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집권당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민심은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지금의 난국 타개에 집권여당이 더욱 분발할 것을 촉구한 셈이다.
또 이번 총선은 싱가포르 리더십의 세대교체를 가늠하는 의미가 있었다. 1세대 리콴유, 2세대 고촉통, 3세대 리셴룽에 이어 4세대 신지도부 출범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지가 관심사였다. 리셴룽 총리는 늦어도 자신이 70세가 되는 2022년 3월까지 총리직을 이양할 뜻을 밝혔고, 인민행동당도 2018년 11월 헹스위킷 부총리 겸 재무장관(59)을 후계자로 확정했기 때문에 헹스위킷을 중심으로 한 4세대 지도부로의 권력승계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다소 브레이크가 걸린 양상이다. 헹스위킷은 자신이 출마한 5인 선출 이스트코스트 집단선거구에서 야당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는 데 그쳤고, 총리실 장관 등 4세대 유력인사가 포진한 4인 선출 셍캉 집단선거구에서는 제1야당 노동자당(WP)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여당 독주에 브레이크 건 민심
선거운동 기간이 9일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야당의 공세와 선전이 두드러졌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노동자당을 비롯해 10개 야당이 전체 선거구에 출마해 경쟁했다. 특히 인민행동당 출신 유력 정치인 탄쳉복이 지난해 결성한 전진싱가포르당(PSP)에 리셴룽 총리의 친동생 리셴양이 입당한 것이 주목받았다. 리셴양은 리셴룽 총리와 인민행동당이 리콴유의 가치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인민행동당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형제의 난’으로까지 일컬어진 두 형제간 불화는 선친인 리콴유 전 총리의 유훈을 둘러싼 갈등에서 연유한다. 자신의 사택을 허물라는 리콴유의 유언을 리셴룽 총리가 어기고 이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셴룽이 아들 리홍위로의 ‘3대 징검다리 세습’을 꿈꾸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은 여당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싱가포르는 지난 60년간 어떻게 인민행동당의 일당지배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와 인민행동당 정부가 이룩한 경제 발전과 부패 척결의 업적에 대해 싱가포르 국민들이 높은 신뢰와 자긍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당지배체제의 집권여당은 사실상 모든 국가기관을 장악하므로 일반 국민들은 국가와 동일한 정치조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리콴유의 유산'은 이어질까
또 여당에 유리한 독특한 선거제도와 절차도 도움이 됐다. 지역구 선거는 의원 1명을 선출하는 단일선거구 14개, 4~6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집단선거구 17개에서 총 93명을 선출한다. 집단 선거구는 중국계 외의 소수 종족 후보자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 조직이 약한 야당은 유력한 집단후보를 내기가 쉽지 않다. 집단 선거구는 승리한 당이 의석을 모두 차지한다. 따라서 득표율과 의석 비율에 큰 편차가 나타난다. 이번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은 득표율이 61.2%였으나 의석은 89.2% 를 차지했다.싱가포르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인가. 리셴룽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코로나 위기에 따른 국민들의 고통과 우려, 다양한 의견에 대한 열망이 표출됐다고 인정했다. 특히 젊은 층의 바람에 부응하고 야당과 협치를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리콴유의 유산에 의존하던 종래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과 진정으로 함께하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 4세대 지도부로의 안정적 권력 이양을 위해서는 선거 후 국정을 다지면서 신지도부가 정치적 리더십과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싱가포르가 전환기적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는 45회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