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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열 가지 취향 있다…소비자 '0.1명'으로 나누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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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신발을 ‘우리 애기’라고 부르며 불안한 마음에 세탁소에도 못 맡기는 ‘슈즈 마니아’.
삼성전자가 올해 하반기 내놓을 ‘신발관리기’의 타깃 소비자다. 회사 관계자는 “같은 소비자라도 맥락, 감정 등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진다”며 “‘나를 위해 나왔다’는 느낌을 주려면 타깃 소비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시시콜콜한 취향을 연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선 “세그멘테이션(세분화)의 단위는 0.1명”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소비자들의 변덕을 잡아내기 위해선 심도있는 소비자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신혼부부 다 같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신혼가전 캠페인에 이른바 ‘0.1명 마케팅’ 기법을 적용해 대박을 쳤다. 우선 ‘신혼테리어(신혼+인테리어)’라는 신조어를 내세웠다. 신혼부부들이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소비자층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쪼갰다. ‘예쁜 주방에서 함께 요리하는 게 꿈인 신혼부부’, ‘집에서 함께 운동하며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신혼부부’ 등으로 소비자들을 나눠 구체적인 가전 조합을 제안했다.



올 1~6월 삼성 디지털프라자에서 삼성전자 멤버십을 통해 혼수를 구매한 소비자의 숫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세 배 가량 늘었다. 가전제품 세 가지 품목 이상을 동시에 구매한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약 65% 뛰었다. ‘삼성전자 콜렉션’을 전부 사들인 소비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올 하반기 들어서는 신혼부부층을 더 잘개 쪼갰다. 이들의 걱정거리를 빅데이터로 취합한 뒤 세분화했다.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사갈 가능성 등 미래 불확실성도 가전 구매에 영향을 끼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윤태식 삼성전자 한국총괄 마케팅 담당 상무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주거 고민까지 반영한 가전 조합을 만들어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내 자신도 몰랐던 성향도 알려준다
기업들은 제품 개벌에 데이터 애널리스트, 행동경제학자, 마케팅전문가, 심리학자, 뇌공학자 등을 투입하고 있다. 고객 행동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7개 디자인 연구소, 트렌드 랩, 각 사업부 상품기획팀 등에서 수시로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한다. 지역과 연령대, 국적 뿐 아니라 날씨, 기분, 가족관계 등에 따라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이 달라진다고 본 것이다. 이달 초 출시한 ‘뉴셰프 컬렉션’ 냉장고를 기획할 때 분석한 데이터는 195만개에 달한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소비자가 가전제품을 이용하는 시간, 각도, 뇌파 반응까지 측정해 데이터로 저장한다. 최근 출시한 LG 트롬 워시타워의 높이, 버튼 위치 등을 디자인할 때 이런 데이터를 반영했다. 사용습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건조기를 쓸 때마다 발 받침대에 올라가는 소비자가 많았다. 주요 사용층인 여성소비자들은 기존 세탁기와 건조기를 위아래로 배치했을 때 기준 상단부에 손이 잘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LG전자가 워시타워의 높이를 기존 동급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위아래로 설치한 것보다 87㎜가량 낮춘 이유다. 버튼 조작부도 누르기 편하도록 제품 중앙에 오도록 디자인했고, 상단 건조기 도어 중심부는 어깨 부근에 위치하도록 설계했다. 도어 우측 상단과 하단에 모두 손잡이를 단 것도 키가 작은 소비자를 배려한 변화다.

○대세가 된 마이크로 티깃팅
똑같이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여도 커피를 마시는 시간과 상황이 다르다. 신한카드는 이들을 ’커피 선호층‘으로 묶는 대신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고, 쇼핑을 자주 즐기는 김모씨’ ‘커피는 점심 식사가 끝난 뒤 마시고, 주말에는 영화를 관람하는 박모씨’ 등 다른 타깃으로 본다. 이들에게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카드혜택을 보낸다. 지난해 선보인 ‘초개인화’서비스다. 2018년부터 카드결제 빅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 생활패턴을 2만여개로 세분화한 결과다. 올해는 포털사이트 등 제휴사 데이터까지 반영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했다. 똑같은 커피라도 타깃 소비자의 취향과 커피 브랜드에 따라 달리 쓸 수 있는 카드혜택을 제공한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변한 것도 기업들이 ‘0.1명 마케팅’을 강화하는 이유로 꼽힌다. 소비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붕어빵 제품’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 교수는 “‘뭘 좋아하는지 몰라 다 준비했다’는 방식 보다는 ‘너를 위해 준비했다’고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며 “각 소비자 수요에 대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마케팅 기법은 과거 이론적으로만 가능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실이 됐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장르만 7만6000여개로 세분화했고, 시청자들의 선호도는 2000여개로 나눠 파악한다. 각 시청자에 따라 영상 섬네일(미리보기 화면)을 다르게 띄우기 위해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진화하면서 소비자를 분석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었다”며 “구글, 넷플릭스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먼저 마이크로 타깃팅을 시작한 뒤 금융, 전자 등 업계로 확산하며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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