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물을 화려한 색채감으로 표현해내는 홍경택(52),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동구리’의 화가 권기수(48), ‘붉은 산수’의 이세현(53), 현대판 ‘책거리’라 할만한 ‘책장 시리즈’의 강예신(44)의 작품들이 한 전시 공간에서 만났다. 재래식 베틀로 천을 짜면서 그 안에 회화를 구성하는 차승언(46), 즉흥적 연상작용을 화면을 구성해내는 김남표(50), 현대인의 꿈과 욕망을 다양한 오브제로 화면에 등장시키는 민성식(48)의 작품도 함께 나왔다.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1층 아들리에 아키에서 열리고 있는 ‘ENDLESS : 확장된 시선’ 전에서다. 아틀리에 아키가 개관 10주년 기획전의 2부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융합적 소재와 아이디어를 기발한 화법으로 창작한 기발한 이들 7명의 회화, 입체 작품 등 신작과 근작 2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입구 맞은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홍경택의 펜 시리즈 ‘Pens-Anoymous’이다. 2015~2019년에 작업한 세로 248.5㎝, 세로 333.3㎝의 대작이다. 커다란 화면에 빼곡히 배치된 형형색색의 연필과 펜들이 화려한 색채가 시선을 압도한다. 귀여운 캐릭터가 입혀진 연필과 펜의 머리를 화면 중심에 배치하고, 뾰족한 끝은 사방으로 뻗어나가게 해 중심으로 쏠리는 응집력과 무한한 원심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홍경택은 2007년과 2013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연필 1’으로 한국 현대미술품 최고가를 잇달아 경신했던 작가다. 일상의 사물들을 반복적인 패턴으로 중첩하고 밀도높게 쌓아올려 리듬감 있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권기수와 이세현의 작품 세계도 흥미롭다. 귀여운 동그라미 얼굴에 스마일 입모양을 하고 있는 ‘동구리’ 시리즈는 홍익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권기수의 대표작. 얼핏 보기엔 서양화 느낌이지만 동구리의 단순한 먹선부터 한국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세계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작업한 ‘Oar Series’ ‘Beauty in Thorns’ 등 두 점을 내놓았다.
홍익대와 런던 첼시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이세현은 한반도의 수려한 자연과 그 속에 담긴 사건들을 동양화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서양화 기법으로 담아낸 ‘붉은 산수’로 유명하다. 바다와 섬, 정자와 누각, 등대와 배, 집과 들판 등을 한 화면에 여러 층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올해 작업한 ‘Between Red’ 시리즈 2점과 지난해 만든 ‘Between Blue’ 시리즈 1점을 선보이고 있다.
유럽과 홍콩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강예신은 세로 160㎝, 가로 110㎝, 폭 5㎝의 신작 책장 시리즈 ‘When romance passes my side…’를 출품했다. 서점에 진열된 책과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의 작은 모형을 일일이 만들어 28칸의 책장에 빼곡히 꽂았다. 초록의 숲에 고양이와 함께 드러누운 토끼와 고양이도 책장에 배치했으니 ‘현대판 책거리’라고 해도 좋겠다.
전통적인 베틀로 씨실, 날실을 직접 짜면서 그 위에 그림을 표현해낸 차승언의 직조회화 작품,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화면에서 담으면서 파스텔, 콘테 등의 재료를 직접 손끝으로 다룬 김남표의 회화, 자동차·보트·전원주택 등 현대인의 꿈과 욕망을 상징하는 일상의 다양한 오브제들을 왜곡된 시점과 선명한 색채 대비로 한 화면에 등장시킨 민성식의 회화와 설치작품 등도도 시선을 끈다.
김은경 아뜰리에 아키 대표는 “2000년대 중반부터 미술이 과학, 음악 등 여러 분야와 융합되면서 기발한 화법으로 주목받았던 청년 작가들이 이젠 각자 견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40~50대 중진 작가가 됐다”며 “부단한 예술적 시도와 독특한 화법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이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