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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못 잡을 것"…대책 불신에 '무차별 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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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대폭 강화하는 부동산 세제 대책 발표를 앞두고 서울 아파트값 상승폭이 오히려 더 커졌다. 이번 대책도 집값을 잡지 못하고 더 올리기만 할 것이라는 조바심이 ‘패닉 바잉(공포에 의한 매수)’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이달 첫째주(6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주 대비 0.11% 올랐다고 9일 발표했다. 상승폭이 직전 주(0.06%)보다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작년 12월 셋째주(0.20%) 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송파구 상승률이 0.18%로 서울 25개 구 가운데 가장 높았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닌 신천·문정·방이동에 매수세가 몰렸다. 문정동 파크하비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까지 13억원대 중반에 거래됐지만 최근 14억5000만원에 매매됐다. 문정동 M중개업소 관계자는 “1주일 새 호가가 5000만~1억원가량 뛰었다”며 “매수자들이 집도 안 보고 계약금부터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0.03%→0.12%)와 서초구(0.06%→0.10%)도 상승폭이 확대됐다. 일부 단지에서는 “매물이 나오면 5분 안에 나간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5㎡도 26억5500만원 신고가로 최근 계약됐다. 지난달 최고가인 24억9000만원에서 1억6500만원 올랐다. 대치동 B공인 대표는 “전세 매물이 귀해지면서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할 수 있는 곳 매물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강북 인기 지역인 마포구(0.14%) 용산구(0.10%) 성동구(0.07%)도 강세였다. 노원구(0.13%) 도봉구(0.14%) 강북구(0.13%) 등의 오름세도 이어졌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0% 올라 54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번 넘게 나온 대책이 실패하면서 정부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며 “규제만으로는 집값이 안 잡힌다는 확신이 무차별 매수세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억 올렸는데 5분 만에 계약"…'센 대책' 나온대도 더 뛰는 집값
“집주인들이 하루에 몇천만원씩 호가를 올리고 있어요. 계약서 쓰는 자리에서 3000만원을 올려도 팔립니다.” (성북구 정릉동 D공인 관계자) “로열층 매물은 5분 만에 나가더라고요. 층과 향이 안 좋은 ‘못난이’ 매물이라도 계약금부터 넣었습니다.” (송파구 문정동 P아파트 매수자)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 세제 대책 발표가 예고됐지만 서울 아파트 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규제 발표 전후 일시적으로라도 주춤한 뒤 반등하던 과거 패턴과 다른 양상이다. 여기에는 세 부담 강화 등 정부가 예고한 대책으로는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 있다. 대책이 발표되고 나면 ‘조정 후 반등’이 반복돼 “더 늦기 전에 사야 한다”는 분위기다.

30대 부부, 월차 내고 중개업소 투어
서울 강남지역에선 매물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집주인들은 매수자가 나타나면 매물을 일단 거둬들였다가 기존보다 5000만~1억원가량 호가를 높여 다시 내놓고 있다. 매수 희망자들은 “매물이 나오면 곧바로 계약금부터 보내겠다”며 중개업소에 먼저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규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송파구 신천·문정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잠실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자 주변 지역으로 매수세가 몰렸다. 문정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한 문정동 파크하비오 매수 희망자가 집도 보지 않은 채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확인해보니 이미 몇 분 전에 계약이 끝났다”고 말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는 지난달 27일 17억원에 거래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작년 10월께 직전 최고 거래가인 16억원보다 1억원 뛰었다.

성북구 길음뉴타운의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전용 84㎡는 지난 7일 14억5000만원에 팔리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 주택형은 올 2월 실거래가가 처음으로 13억원을 찍은 뒤 신고가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성동구 왕십리뉴타운의 센트라스 전용 59㎡ 역시 이달 8일 역대 최고가인 11억8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 아파트는 현재 호가가 12억5000만원까지 뛰었다.

상대적으로 매매가가 저렴한 ‘노원·도봉·강북구(노도강)’ 등 서울 외곽지역 아파트 시장에선 30대들의 ‘패닉 바잉’이 이뤄지고 있다. 한 30대 직장인은 “매일 부동산에 전화하고 퇴근길에 들르는데도 번번이 매물을 놓쳐서 아내와 평일 월차를 내고 중개업소를 돌았다”며 “저층에 동향이라 마음에 들지 않지만 또 놓칠 것 같아 계약했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3단지 전용 84㎡는 지난달 18일 8억7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전고가는 5월의 8억4500만원이다. 노원구 중계동 중계청구3차 전용 84㎡도 최근 10억300만원에 손바뀜하며 처음으로 10억원을 넘어섰다.
“수급 놔두고 세제로 해결 못 해”
정부의 추가 부동산 세제 대책은 물론이고 공급 확대 방안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종합부동산세는 6월 1일 기준으로 과세 여부가 결정되고 납부는 12월에 한다. 즉 이번에 종부세 세율을 아무리 높여도 다주택자로서는 내년 6월까지만 주택을 정리할지 결정하면 된다. 급하게 매도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또 양도세를 중과하면 오히려 버티기나 증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말까지 양도세 중과를 유예해줬지만 다주택자들은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1566건으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증여 건수(552건)의 세 배에 달했다.

세금을 높일수록 ‘매물 잠김’ 현상이 일어나 집값이 상승한 과거 패턴이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집값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문제기 때문에 수요를 억제한다고 해서 집값이 내려가진 않는다”며 “정부가 세제 대책을 내놓으면 매물이 잠기면서 집값이 오히려 뛸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곳곳에서 신고가가 쏟아지는 이유는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못 산다’는 매수자들의 불안감 때문”이라며 “다만 종부세·양도세를 획기적으로 높이면 일부 조정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심은지/장현주/정연일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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