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09일(14:3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영업환경 악화로 고전하는 롯데그룹이 자금조달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과 호텔롯데가 오랜만에 기업어음(CP) 발행 비중을 늘리고 있다. 실적 부진으로 인한 신용도 악화로 차입여건이 나빠지자 부담이 덜한 자금 조달방식을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롯데쇼핑은 오는 14일 3년 만기 CP 2000억원어치를 발행한다. 이번 CP는 이자(연 2.161%)를 미리 액면가격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발행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약 1870억원이 회사로 유입된다. 이 회사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차입금 상환 및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채권시장에선 롯데쇼핑이 평소와 달리 3년 만기로 자금을 빌리는 수단으로 회사채가 아닌 CP를 택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롯데쇼핑이 만기 1년 이상 장기 CP를 발행하는 것은 2017년 12월(1500억원) 이후 2년7개월 만이다. 이때를 제외하면 만기 3년이 넘는 중장기 자금은 대부분 회사채시장에서 조달했다. 지난 4월에도 3년 만기로 35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했다.
호텔롯데도 비슷하게 자금 조달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 회사는 오는 20일 차입금 상환을 위해 2년4개월 만기로 3000억원어치 CP를 발행할 계획이다. 호텔롯데가 만기 1년이 넘는 CP를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364일물 2150억원어치를 발행하는 등 최근 CP시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임시로 CP 시장을 대체 조달처로 삼았다는 평가다. CP는 만기가 1년 이상이면 투자 위험요인을 적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공모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회사채처럼 수요예측(사전 청약)을 거칠 필요는 없다. 그만큼 투자자 모집 과정에서 발행기업이 어떤 평판을 받는지 덜 노출된다. 이런 이유로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재판 등 각종 악재가 겹쳤던 2017년에도 CP 활용 비중을 키웠다.
유통·관광·식음료 등이 주력인 롯데그룹은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이동 제한과 소비활동 둔화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 핵심인 롯데쇼핑(433억원)과 호텔롯데(1560억원) 모두 지난 1분기 순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당분간 험난한 영업환경이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롯데쇼핑과 호텔롯데의 신용등급(모두 AA)에 ‘부정적’ 전망을 달아놓고 있다.
롯데그룹을 바라보는 우려는 회사채 금리 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롯데쇼핑이 지난 4월 발행한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연 2.331%로 채권유통시장에서 거래가격을 산정할 때 기초가 되는 시가평가 금리보다 0.6%포인트 높게 결정됐다. 그 뒤를 이어 5월 회사채시장 문을 두드린 호텔롯데 역시 시가평가보다 0.6%포인트 높은 금리(연 2.177%)로 3년물을 발행했다. 두 회사 모두 이전까지 높아야 0.2~0.3%포인트가량의 가산금리를 붙여 채권을 발행했던 것을 고려하면 조달비용이 크게 뛴 셈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투자심리를 가라앉힌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있어 롯데그룹이 당분간 CP 발행 확대 등을 통해 자금 조달전략을 변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자금 비중을 확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장기 신용등급이 강등 위기에 처한 것과 달리 롯데쇼핑과 호텔롯데의 단기 신용도는 여전히 최상위인 ‘A1’을 유지하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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