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근무하는 기업 임직원들이 국내 의료진에게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술도 엄격한 성인 인증을 거치면 실내 무인 자판기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2020년도 제2차 산업융합 규제 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첫 민간 규제 샌드박스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등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나올 때 일정기간 규제를 유예하는 제도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지난 5월부터 규제 샌드박스 적용 여부를 심사하는 첫 민간지원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승인된 과제는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2건) △자동차 소프트웨어 무선업데이트 △홈 재활 치료 기기 스마트 글러브 △공유미용실 △AI(인공지능) 주류판매기 △렌터카 활용 펫 택시 △드론 활용 도심 시설물 점검 서비스 등 총 8건이다.
인하대병원과 라이프시맨틱스가 진행하는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앱은 2년 간 임시허가를 받았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단·처방 등의 의료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앞으론 해외에서 근무하는 근로자가 앱에 증상을 입력하면 국내 의료진의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처방전을 발급 받아 현지병원에서 투약 등 필요한 조치를 진행할 수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해외에서 언어 문제 등으로 의료서비스 이용에 애로를 겪는 국민들이 많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중동 근로자들로부터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 서비스 제도화에도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소아마비, 뇌졸중 환자 등의 '가정 재활'을 돕는 스마트 글러브(사진)도 국내 시장에 출시할 수 있게 됐다. 현행법상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는 단순 모니터링과 내원 안내까지만 가능하다. 심의위는 실증특례를 통해 최초 처방 범위 내의 비대면 상담과 조언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전 성인인증을 통해 술을 자동결제하는 AI 실내 주류판매기(사진)도 소상공인 영업장에서 테스트를 시작하게 됐다. 시범 운영 결과를 보고 유·무인 편의점까지 사업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대한상의는 "소상공인이 미성년자의 고의적 주류 구매로 송사에 휩싸이거나 영업정지 등으로 폐업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AI 주류판매기로 분쟁 시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소프트웨어(내비게이션) 무선 업데이트가 가능하게 하는 현대차의 OTA(Over The Air) 서비스도 임시허가를 받았다. OTA는 자동차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꼽힌다. 자동차 전장(전기·전자 장치) 부품이 늘면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테슬라, BMW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는 이미 OTA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서는 할 수 없었다. 전자제어장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자동차 정비업에 해당되기 때문에 정비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의위는 향후 OTA 기능이 적용되는 자동차에 대해 소유자의 동의를 거쳐 업데이트 하도록 임시허가를 부여했다. 국토교통부는 임시허가 기간 동안 자동차 전자 제어장치 무선 업데이트 서비스를 정비업 제외사항에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밖에 미용실 하나에 여러 명의 미용사가 입주하는 공유미용실(제로그라운드), 자율비행으로 도시 시설을 점검하는 순찰 드론(무지개연구소), 승차 거부 없는 반려동물 택시(나투스핀) 등도 사업 기회를 얻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국무조정실, 산업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민간 샌드박스가 첫발을 내디뎠다"며 "앞으로도 신사업 효시가 될 혁신제품과 기술 출시를 지속해서 돕겠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