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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칼럼] '부동산 과열'을 해결할 확실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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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家)는 유럽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다. 15세기 중반부터 600년 동안 스페인과 네덜란드,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그랬던 왕조가 종말을 맞은 과정이 허무하다. 대를 이어갈수록 아래턱이 돌출하는 유전병이 심해졌다. 가문의 마지막 왕자는 음식을 제대로 씹기조차 못했다.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그렇게 대(代)가 끊겼다. 합스부르크 왕족들이 유전병을 앓은 것은 근친결혼 탓이었다. 가문이 이룬 것을 ‘우리끼리만’ 누리기 위한 순혈주의의 대가는 혹독했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외세의 침략이 아니라 대를 잇지 못해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주 내놓은 ‘6·17 부동산 대책’을 보면서 합스부르크가를 떠올린 데는 이유가 있다. 부동산시장 과열과 투기를 막기 위한 조치를 정권 출범 이후 스물한 번째로 발표했다.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려면 사실상 자기 돈으로만 가능하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은 ‘갭투자’로 간주돼 6개월 내에 입주해야 하며, 서울 강남의 몇몇 지역에서는 주택을 사고팔 때마다 일일이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와 재산권 등 기본권을 박탈했다는 주장에서부터 중산층의 내 집 마련 꿈을 틀어막았다는 비판까지 아우성이 즉각 불거졌다.

‘상유정책 하유대책(上有政策 下有對策:높은 분들이 정책을 내놓으면, 아랫것들은 대책을 마련해 살 길을 찾는다)’은 사회주의체제 중국의 속살을 설명하는 대표 키워드이자, 강력한 통치기제가 작동하는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경구(驚句)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6·17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무섭게 경기 김포와 파주 등 규제 대상에서 빠진 지역의 집값(매매호가)이 치솟았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규제 일변도 정책을 쏟아내 온 정부가 머지않아 추가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한 결과다.

어떻게 해서든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해소하고, 지나친 투기행렬을 끝장내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옳다. 문 대통령이 올초 신년사에서 “국민에게 상실감을 줄 정도로 이례적으로 가격이 오른 부분은 안정화로 만족하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로 일부 지역의 오름세가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짚어봐야 할 것은 방법론이다. 한결같이 분양 및 대출을 규제하고 구입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수요억제 위주 조치만 내놓았다. 부풀어 오른 풍선의 어느 한쪽을 찍어 누른다고 바람을 뺄 수 없듯이, 본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주거에 편리한 조건을 두루 갖춘 지역의 집값이 치솟는 것은 세계 공통현상이다.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유력 기업들이 들어찬 도시의 집값은 서울 강남 따위가 견줄 바 아니다. 캐나다 밴쿠버처럼 경제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는데 살인적 집값을 기록하는 도시도 많다. 하지만 어떤 나라와 도시도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그런다고 해서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는 사람들의 욕구와 거기에 편승한 투자수요를 억누를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실수요자 위주의 구매로 안착시키고 싶다면, 돈뭉치가 부동산 외의 다른 곳으로 퍼지도록 하는 정책을 고민할 때가 됐다. 그러려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시급하다. 증권과 사회간접자본(SOC) 등의 투자가치가 높아지면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려 있는 돈은 저절로 분산된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테슬라 구글 등 신기술 기업들이 왕성하게 뻗어나가는 미국에서는 부동산보다 증권시장이 훨씬 더 뜨겁다.

한국도 이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문 대통령이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던 ‘혁신성장’에 제대로 시동을 걸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존 사업자들에게 붙잡힌 발목을 털어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걸 외면한 채 “부동산 투기를 때려잡고야 말겠다”고 달려들수록 일은 더 꼬인다. “시장은 얼마든지 통제와 설계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로 똘똘 뭉친 ‘생각의 근친교배’를 대표하는 작품이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 “우리 방식만이 옳아”를 되뇌는 정권이 국회 절대다수 의석까지 거머쥐었으니, ‘오기 정치’의 비용이 어디까지 불어날지 걱정스럽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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