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2020이 오는 25일부터 펼쳐지는 경기 포천힐스CC의 별명은 ‘행운의 언덕’이다. 이 말은 코스가 발톱을 드러내기 전의 얘기다. 샷한 공이 놓인 자리는 고도의 샷 기술을 발휘해야 탈출할 수 있는 ‘복합 라이’인 곳이 허다하다.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산악 코스의 전형이다. 초대 챔피언 조정민(26)은 “티샷과 세컨드샷을 할 때 특히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스터리한 코스”포천힐스는 지난해 처음 정규 프로골프 대회를 열었다. 선수들에게 알려진 코스 정보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지난해 대회에 출전한 ‘베테랑’ 이선화(34)는 “만만한 홀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통산 4승, KLPGA 투어 3승을 거두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당시 이틀 동안 10오버파를 쳤다. 1라운드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가 34명에 불과했고, 13오버파를 친 선수도 나왔다. 3라운드가 지났을 즈음 시즌 최다기록인 16명이 대회를 기권했다.
선수들을 집어삼킨 ‘귀신홀’은 12번홀(파4·341m)로 집계됐다. 나흘간 평균 타수가 4.22타로, 선수들은 기준 타수보다 0.22타를 더 쳤다. 90개의 보기가 나온 이 홀에서 최혜진(1라운드)과 임희정(2라운드) 등 KLPGA의 대표 선수들이 더블보기를 범했다. 정구학 포천힐스 대표는 “조금만 당겨쳐도 공이 워터해저드로 들어가고, 오른쪽으로 살짝 밀려도 가파른 절벽의 깊은 풀숲으로 공이 빠진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15m 안팎의 좁은 페어웨이에 공을 정확하게 떨궈야 했다.
9번홀(파4·366m), 5번홀(파4·343m)도 복병으로 꼽힌다. 선수들은 두 홀에서 각각 기준 타수보다 0.18타, 0.17타를 더 쳤다.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전장이 길지 않지만 산악 지형은 물론 페어웨이가 좁아 러프 길이에 따라 난도가 크게 올라갈 수 있는 코스”라며 “변별력을 갖출 홀과 골프팬들을 위한 버디쇼가 나올 홀 등을 확실히 구분해 대회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글 명당’ 8번홀 장타자 유리이승연(20)은 코스와 궁합이 잘 맞았다. 첫날에만 버디 10개를 몰아쳤다. 이 코스에서 나온 한 라운드 최다 버디 기록이다. 이승연은 1라운드 8번홀(파4·254m)부터 11번홀(파3·171m)까지 4개 홀 연속으로 버디를 낚으며 최다홀 연속 버디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 대회 우승자인 조정민도 마지막 라운드 6번홀(파3·143m)부터 9번홀(파4)까지 4개 홀에서 연거푸 버디를 잡아내 역전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행운의 여신이 대회 내내 미소를 띤 곳은 8번홀. 오르막 경사인 이 홀에서 장타자들은 대다수 ‘원온’을 노렸다. 대회 기간 이 홀에서 나온 이글만 6개. 조아연 박지영 지한솔 김보배 최혜진 김운교가 이글을 잡으며 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 위원장은 “3, 4라운드부터는 8번홀에서 원온이 가능하게 세팅해 많은 버디가 나올 수 있게 했다”며 “흥미 요소를 가미한 코스 구성”이라고 말했다.
전반에 8번홀이 있다면 후반엔 18번홀(파5·497m)이 승부홀이다. 선수들이 기록한 평균 타수는 4.7타. 대회 기간에 136개의 버디가 쏟아진 18번홀은 대회 코스 가운데 평균 난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8번홀을 얕잡아 봤다가는 큰코다치기 일쑤다. 3라운드 17번홀(파4·349m)까지 2위와 7타 차 선두를 달리며 깜짝 스타 탄생을 기대하게 했던 한상희(30)는 이 홀에서 심한 훅샷을 내고 3타를 잃어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한상희는 “17번홀에서 18번홀 티잉 에어리어로 올라오는 동안 하체에 힘이 풀렸다. 상체 회전이 더 빨리 되면서 샷이 나도 모르게 확 감겼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행운의 여신은 홀인원 한 개를 선물했다.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이 2014년 시작된 뒤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홀인원의 주인공은 박신영(26). 그는 1라운드 14번홀(파3·156m)에서 티샷한 볼을 그대로 홀 안에 집어넣었다. 박신영은 이 샷으로 지난해 이 대회 이전 상금(5000만원)보다 많은 1억2000만원짜리 고급 자동차(마세라티)를 홀인원 경품으로 받았다. 올해도 이곳엔 같은 경품이 걸릴 예정이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