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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순의 과학의 창] 약장수 논리와 임상시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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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순의 과학의 창] 약장수 논리와 임상시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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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최근 들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퍼지고 있다. 이제는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는 순간 코로나는 그 허점을 여지없이 파고드는 듯하다. 전문가들이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백신 개발은 최소 18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종종 어떤 의약품이 코로나 치료 또는 항체 생성에 효과가 있다더라고 전하고 있다. ‘효과가 있으면 처방해 치료 또는 예방하면 될 텐데 18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뭐지?’ 이에 대해 한마디로 답하자면 ‘임상시험’이다. 모든 의약품은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그 약효를 검증받아야 한다. 임상시험에 대한 개념은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그 절차와 기준이 체계화돼 각 국가가 엄격히 규제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 임상시험이야말로 현대의학을 전통의학과 구분해주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기제 중 하나다.

일례로 오늘날에는 수은이 독성물질이라는 것이 상식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수은을 약품이나 화장품으로 사용했다.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으로 표면장력이 높아서 쉽게 방울진다. 책상이나 바닥에 수은을 흘리면 표면을 적시지 않고 구슬처럼 또르르 굴러다니는데 보고 있으면 신기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런 연유로 고대부터 많은 사람이 수은을 신비한 물질로 받아들였는데, 그 신비함은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존재한다면 이런 신비한 물질이지 않을까?’라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약으로도 쓰인 독성물질 수은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수은을 함유한 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고대 중국인들은 수은을 크랜베리 주스에 섞어 먹으면 남성의 정력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도 했다. 미국 링컨 대통령도 우울증 치료를 위해 수은 또는 수은 화합물을 주요 성분으로 하는 청괴(靑塊)라는 알약을 꾸준히 복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수은이 신경독성 물질임을 감안하면 그의 우울증이 쉽게 치료되지 않은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수은의 의학적 주용도는 매독, 백선, 습진 등의 피부질환용 약품과 연고였지만, 그 외에 변비나 결막염 치료용, 치과 아말감으로도 사용됐다. 수은 중독의 증상 중 하나는 볼이 홍조를 띠는 것인데, 그게 예뻐 보인다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염화수은이 들어간 미용크림이 유통되기도 했으니 그 쓰임새가 참으로 무궁무진했다.

수은 중독은 대개 서서히 일어나고, 산(酸)이나 청산가리처럼 그 독성이 확연히 눈에 띄는 물질이 아니다 보니, 수은 복용 후 병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되면 수은에 대한 신비감과 맞물려 약효가 있다고 믿었으리라. 기본적으로 인체는 워낙 복잡해 약과 독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모든 약은 적정량을 섭취했을 때만 약일 뿐, 과다하게 복용하면 독이 된다. 또 같은 물질을 같은 양 복용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약이,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방법이 과학과 통계에 기반한 임상시험이다.

기적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가 중요

세상은 워낙 넓어서, 이 세상을 뒤져보면 듣도 보도 못한 식약품만 먹으며 불치병을 치료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례를 앞세워 그 식약품을 홍보하는 이들을 우리는 흔히 약장수라고 부른다. 약과 독에 대한 진실은 가려내기 까다로운 데 비해 약장수의 논리란 참으로 단순하고 호소력이 있어서 현혹되기 쉽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말라리아 치료제 중 하나를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복용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어떤 증거에 기반해서 이 약품을 복용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 약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였다. 기자는 과학적 증거를 물었는데 트럼프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로 대답했으니 가히 약장수의 논리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대통령도 약장수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니, 그 함정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쉬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 함정이 누구도 못 피할 함정은 아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팀이 뒤진 상황에서 감독이 팀의 4번타자 대신에 1할 타자를 대타로 낸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 감독의 정신건강을 의심할 것이다. 물론 1할 타자도 안타를 친 적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안타를 친 적이 있다는 사실과 안타를 잘 친다는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 이게 바로 약장수의 논리와 임상시험에 기반한 현대의학의 차이다.

현대의학이 기적의 치료제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여전히 약의 부작용은 존재하며, 누군가는 그 부작용으로 목숨을 위협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할 일은 의과학자들에게 시간과 신뢰를 주며, 인내심을 갖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기적의 치료제 다음으로 좋은 약을 찾아줄 것이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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