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검찰-언론)유착’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채널A 이모 기자가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요청했다. 자신에 대한 기소 여부 등을 수사팀이 아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다수의 검사 및 전문가’들로부터 판단받아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수사팀, ‘절차적 형평성’ 잃었다”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기자의 변호인은 전날 오후 3시께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전문수사자문단은 현직 검사와 대학 교수 등으로 구성된다. 즉, 현재 검찰 수사팀이 ‘불공정한 수사’를 하고 있어 신뢰할 수 없다고 보는 변호인 측이 이 사건을 수사팀 외부인 시각에서 한번 봐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변호인은 “채널A 기자들은 주거지 압수수색을 모두 받았고 이 기자의 주거지에는 두 차례 압수수색이 진행됐으며, 포렌식 절차 및 두 차례에 걸친 소환조사까지 모두 신속하게 진행됐다”며 “나머지 피고발인들에 대한 수사도 균형 있게 해줄 것을 수사팀에 요청했지만, 나머지 사건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현저히 ‘절차적 형평성’을 잃었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의혹은 이 기자 등이 모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재 수감 중인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대표에게 접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제보해달라고 강압취재를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이 전 대표의 대리인인 지모씨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지씨 역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MBC는 지씨의 제보를 받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2014년 신라젠에 65억원을 투자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최 전 부총리는 보도 내용을 부인하며 MBC와 지씨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두 사건 모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가 수사하고 있다.
검찰이 지씨 수사에는 미적거리면서 본인 수사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 이씨 측 판단이다. 이씨의 변호인은 “(지씨는) ‘기자의 협박’에 겁을 먹은 사람의 태도로 도저히 볼 수 없고, 이 기자가 한 적도 없는 발언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됐다”면서 “이 기자의 경우 호텔에서의 위법한 압수수색에 대한 법률상 의견을 제시하였음에도, 위법한 압수물을 반환하지 않은 채 그대로 포렌식 절차를 진행하는 등 위법·부당한 수사 진행도 있다”고 말했다.
또 “본 사건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법치주의상 검찰권의 적정한 행사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며 “균형 있고 절제된 수사가 진행되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현 수사팀의 ‘수사 결론’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덧붙였다.
◆검찰 기소권 견제제도 이용 많아지나대검 예규인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라 검찰총장은 중요사안의 처리와 관련해 공소제기 여부 등을 심의할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할 수 있다. 대검 관계자는 “운영 지침이 비공개로 돼 있어 (전문수사자문단 관련) 구체적인 절차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2018년에도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방해 의혹’과 관련해 김우현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 등 검찰 고위 관계자들을 기소할지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전문수사자문단이 열린 바 있다. 당시 변호사와 법학 교수 등 7명으로 구성된 전문수사자문단은 김 부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으며, 검찰도 이 의견을 따랐다. 전문수사자문단의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지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소 여부를 외부 전문가가 판단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바 있다. 전문수사자문단과 수사심의위 모두 기소 여부 등에 관한 외부 의견을 묻는 절차로,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는 제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수사심의위의 경우 법조계·학계·언론계·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해당 안건을 심의하는 반면, 전문수사자문단의 경우 법률가들로 구성된다는 차이가 있다. 수사심의위가 ‘검찰 외부의’ 시각에서 사건을 따져본다면, 전문수사단은 ‘수사팀 외부’ 입장에서 심의를 하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최근 연달아 수사심의위나 전문수사단 소집 요청 등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하는 제도를 활용하려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피의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의 기소권 남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피의자가 이 같은 제도가 존재한다는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자 입장에선 방어권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남용될 경우 검찰 수사가 지연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