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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곽덕준·박현기·이건용…실험미술 거장 대표작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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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1970년대 초중반은 한국 화단에서 실험미술이 꽃핀 시기였다. 화단의 새로운 조형 질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었다. 기성 작가와 이론가들이 함께 결성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패션·영화·연극 등의 20~30대 예술가로 구성된 제4집단,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개념미술을 추구한 ‘Space&Time 조형예술학회(ST)’, 전국의 실험 작가들이 결집한 대구현대예술제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에서 벗어나 입체, 오브제, 설치·개념미술,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대지미술 등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이런 움직임을 통해 탄생했다.

이승택(88) 곽덕준(83) 박현기(1942~2000) 이건용(78) 이강소(77) 등 이 시기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실험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가 16일부터 일반에 공개하는 50주년 특별전 ‘현대 HYNDAI 50’의 2부 전시에서다. 오는 7월 19일까지 갤러리현대 본관과 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현대갤러리와 함께했던 국내 작가 16명, 해외 작가 13명의 작품 70여 점을 선보인다.

실험미술 거장들의 작품은 본관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과 바닥은 물론 천장까지 장식하고 있는 검은색 선부터 만나게 된다. 종이로 감싸고 뭉친 쇠막대로 선과 점의 형태를 만들어 기하학적 패턴을 형상화한 이승택의 ‘무제’다. 1982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세 번째 개인전에서 처음 발표한 이후 38년 만에 공개된 것으로, 전시장 전체로 작품의 공간을 확장해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이승택은 1950년대 후반부터 ‘비(非)조각’을 핵심 개념으로 한 전위적 작품을 발표해왔다. 전통적 조각의 개념에서 벗어나 옹기, 고드랫돌, 노끈, 비닐, 각목, 책 등의 다양한 재료를 작품에 활용했고 물, 불, 바람, 안개, 소리 등 자연의 요소까지 작품에 끌어들였다. 비시각적인 공기를 시각화한 ‘바람’ 퍼포먼스를 비롯한 실험적 설치 및 행위 작품들의 사진도 전시돼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한 곽덕준은 회화로 시작해 1970년대부터 사진, 이벤트, 영상, 퍼포먼스, 판화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한 작품으로 ‘난센스의 미학’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 걸린 2009년 작 ‘오바마와 곽’은 그가 1974년부터 지속했던 ‘대통령’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그는 미국 대선 때마다 ‘타임’지 표지에 실린 당선자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연출했다. 이를 통해 그는 “세계와 나의 관계가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1979년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박현기의 대표 작 ‘무제(TV 돌탑)’ ‘물 기울기’도 만날 수 있다. ‘물 기울기’는 작가가 들고 있는 모니터 4대의 기울기가 달라져도 화면 속 물의 표면은 수평을 유지함으로써 실제로 모니터 안에 물이 들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화랑을 주막으로 만들어 그 자체가 작품이 되게 한 이건용의 1973년 작 ‘소멸(선술집)’과 닭 퍼포먼스 ‘무제’ 등의 기록 사진, 작가의 몸을 예술 매체로 활용한 퍼포먼스를 잇달아 선보인 이건용의 ‘신체 드로잉’ 기록 사진 등도 감상할 수 있다.

신관 전시장은 동시대 미술 트렌드를 주도해온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지그재그로 펼쳐진 12개의 네온 빛으로 벽면을 장식한 프랑수아 모를레(프랑스)의 ‘Prickly πNeonly No. 2, 1=3°’와 조명 및 거울을 이용해 무수한 빛의 집합이 거대한 별자리를 연상케 하는 이반 나바로(칠레)의 ‘Constellations’이 우선 눈길을 끈다. 베네수엘라 조각가 헤수스 라파엘 소토, 미국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1928~2018), 중국 동시대 미술의 힘을 상징하는 쩡판즈와 아이웨이웨이 등의 작품이 시선을 끈다.

강익중 김민정 이슬기 유근택 도윤희 등 국내 작가들의 대표작과 신작도 대거 출품됐다. 문경원&전준호의 ‘이례적 산책-황금의 연금술’은 영상설치 작품이다. 부산의 버려진 폐선박 잔해와 결합한 대형 모니터에 일본 가나자와의 어느 빈집과 한국의 자동화된 식물공장을 교차시킨 영상이 흐른다. 빈집과 무인 공장이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동시대적 삶의 조건을 성찰하게 한다.

강익중은 3인치 정사각형 나무판에 쓴 한글로 문장을 만들고, 전체를 달항아리 모양으로 구성한 신작 ‘내가 아는 것’을 선보였다. 최우람의 대형 신작 ‘One(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은 방호복 천을 소재로 한 거대한 흰 꽃이 서서히 피고 지는 형상의 설치작품으로, 팬데믹(대유행) 시대의 삶과 죽음을 곱씹게 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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