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지난 3월 26일, 한국 최초로 온라인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SKT는 본사 수펙스홀에서 주주총회 현장을 실시간 동영상 중계했다. 참석자는 사전에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주총 참가신청을 했다. 주주명부를 통해 주주 본인이 확인되면 접속 코드를 부여받아 주주총회 당일 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이 온라인 총회에서 2019년 재무제표 확정, 사내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정관 일부 변경 등 안건이 승인됐다. 별도의 질의 응답시간도 마련했다. 온라인 신청사이트를 통해 받은 주주들의 질문에도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이 현장에서 상세히 답변했다. SKT는 이미 2018년부터 이동통신업계 최초로 전자투표제도 도입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SKT의 온라인 주주총회는 원격 주주총회는 아니다. 특정 장소에서 일단 물리적 주주총회를 개최하면서 동시에 출석이 어려운 주주를 위해 온라인 총회를 병행한 하이브리드형 주주총회였다. 물리적 주주총회를 전혀 개최하지 않고 온라인 총회만을 여는 방식이 원격 주주총회다. 한국 상법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현재로서는 원격 주주총회는 위법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상법상 근거가 없어서다. 영미법 체계는 네거티브(negative) 형식이다. ‘이것만 안 되고 나머지는 다 된다’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법은 대부분 포지티브(positive)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것만 되고 나머지는 안 된다”는 식이다. 규제의 강도에서 포지티브 규제가 네거티브 규제보다 더 강력하다.
4차 산업혁명 등과 같은 신사업 분야에선 네거티브 규제가 절실하다. 현재 물리적 총회 없이 원격 주주총회만 열 수는 없으므로 만약 개최했다면 ‘주주총회 결의 취소의 소’의 원인이 된다.
이사회는 주주총회와는 달리 원격으로 개최할 수 있다. 상법 제391조 제2항에 ‘ …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 통신수단에 의한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 이사는 이사회에 직접 출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사 전부’가 불출석한 이사회도 적법하다고 규정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허용 규정이 있어야 주주 전원이 출석하지 않는 주주총회도 가능해진다.
주주들의 관심 부족으로 한국 기업의 주주총회는 관객 없는 연극이 된 지 오래됐다. 게다가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감사(위원)를 뽑지 못한 상장기업 수도 2018년 56건, 2019년 149건, 2020년 315건이다.
정책당국은 이런 법규는 방치하면서 힘없는 기업만 탓한다. 한술 더 뜬 여당의 몇몇 국회의원은 전자투표 의무화를 들고 나온다. 투표방법까지 강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 신종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전자투표 행사율은 예년과 큰 차이가 없다. 어느 소액주주가 아이디, 비밀번호 만들고 공인인증을 거쳐 귀찮고 존재감 없는 전자투표에 참여할 것인가.
그보다는 원격 주주총회를 인정해야 한다. 원격 이사회처럼 상법에 명문 규정을 두면 된다. 2020년 현재 미국에서는 51개 주 중 델라웨어주 등 30개 주 회사법이 원격주주총회를, 14개 주는 현장 주총과 온라인 총회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7개 주는 오프라인 주주총회만을 인정한다. 이와 동시에 출석주주 과반수 찬성에 의한 주주총회 보통결의 인정,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에 적용되는 3% 룰도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개원했다. 거대 여당의 힘자랑에 국민의 의구심도 점점 자란다. 국회의 힘을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데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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