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회의는 늘 통신업계의 비주류 분야였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펙십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때가 온 것이다.”
노르웨이 화상회의 서비스 기업 펙십의 이사회 의장 겸 공동 창업자인 미셸 사겐이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발언에 묻어난 자신감처럼 펙십은 가파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일상화하면서 세계 1위 화상회의 서비스 기업인 줌비디오커뮤니케이션을 위협하는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펙십은 201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발했다. 저렴하고 편리한 영상회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목표였다. 지금은 인텔, 보다폰, 페이팔, 액센츄어, 카약, 폭스바겐 등 190개국 3600여 개 기업 및 기관이 펙십을 이용하고 있다. 직원 수는 225명에 불과하지만 유럽 시장에서 1위를 달린다.
‘유럽의 줌’으로 불리며 줌의 대항마로 부상한 것은 뛰어난 보안성 덕분이다. 펙십의 보안 시스템은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국방부의 인증을 받았다. 또 세계적 표준기술을 적용해 업계 최고 수준의 암호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암호화 시스템이 취약하면 해킹 공격으로 영상회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위험이 있다. 독일 정부와 미군 등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는 국가 기관에서 펙십을 사용하는 이유다.
반면 코로나19 사태 초기 승승장구하던 줌은 불안정한 암호화 기능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서비스 이용 도중 화면에 음란물과 혐오 발언이 갑자기 뜨거나 이용자들이 해킹을 당하는 등 문제가 잇따랐다. 줌 창업자인 에릭 유안이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점도 보안성 의혹을 부추겼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데이터 일부가 중국에 있는 서버를 거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줌을 외면하는 기업과 국가 기관이 줄줄이 나왔다. 이 덕분에 펙십은 반사이익을 누렸다.
펙십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매출은 4700만달러로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사업 초기인 2013년(200만달러)과 비교하면 23배 성장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올 1분기 매출은 1617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6.7%가량 증가했다. 오드 스베르 오슬리 펙십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사용량이 7배 이상 증가해 하루 사용자가 최대 3억 명에 달한다”며 “2025년 매출 3억달러 달성이 목표”라고 했다.
펙십은 지난달 오슬로 증시에 상장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상장 당시 주당 63크로네(약 8157원)였던 주가는 8일(현지시간) 기준 87.8크로네(약 1만1368원)로 46% 치솟았다. 시가총액은 87억4700만크로네(약 1조1325억원)에 달한다. 창업 8년 만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화상회의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작년 말에는 2020년 글로벌 화상회의 시장 규모가 36억달러로 예측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63억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