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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구 시스코코리아 대표 "고객 마음 뺏는 비결은 달변 아닌 경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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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세계 각국의 시스코 지사장이 참석한 영상회의. 조범구 시스코코리아 대표가 척 로빈스 최고경영자(CEO)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왜 한국이 ‘CDA(Country Digitization Acceleration·국가 디지털 가속)’ 프로그램 대상에서 빠졌나요. 한국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예요. 시스코의 혁신을 선보이기에 이만큼 적합한 나라는 없습니다.”

CDA는 시스코가 특정 국가의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상국은 시스코의 글로벌 시장 전략과 맞물려 선정된다. 조 대표의 단도직입적인 제안에 로빈스 CEO는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회의 직후 조 대표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본사 CDA 담당 임원이었다. “지금 로빈스에게서 최대한 빨리 한국 지원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죠?”

지난해 10월 본사 조사단이 서울을 찾았다. 한국은 연말께 CDA 대상국으로 최종 선정됐고 올해 3월부터 교육, 5세대(5G) 이동통신, 클라우드 등 6개 분야에서 시스코 본사의 투자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직접 투자는 물론 시스코 장비를 90% 싼 가격에 공급해 수백억원의 국내 투자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조 대표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열정을 겸비한 전략가’로 꼽힌다. 글로벌 네트워크, 보안 분야 1위 기업인 시스코에서 두 차례 한국지사 대표에 임명됐다. 2009년부터 2년6개월간에 이어 2016년부터 지금까지 8년째 대표를 맡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은 물론 국내 IT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컨설턴트 출신 글로벌기업 지사장 1세대

시스코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인터넷 관련 기술 기업이다. 기업용 네트워크, 영상회의 솔루션, 사이버보안 등 다양한 인프라 시장에서 30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조 대표는 컨설턴트 출신 글로벌 기업 지사장 ‘1세대’다. 서울대와 KAIST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액센츄어에서 20년간 IT 분야 컨설턴트로 일했다. 아태지역 첨단전자사업부 대표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한 그지만 실패에서 가장 큰 교훈을 얻었다. 1998년 한 대기업이 내놓은 수천억원 규모의 기업혁신 프로젝트였다. 10년차 컨설턴트였던 그는 수주를 확신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조 대표는 “비즈니스는 좋은 콘텐츠만으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뼈아픈 경험”이라고 털어놨다. 사업 제안 내용뿐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 가격이 입체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배웠다.

시스코와는 우연히 인연을 맺었다. 2009년 아태지역 콜센터 건립을 제안하기 위해 시스코 측과 몇 차례 만난 뒤 한국지사장 제의를 받았다. “뜬금없는 제의였는데 나도 모르게 ‘OK’란 말이 나오더라고요. 20년간 컨설팅으로 쌓은 노하우를 실제 경영 현장에 적용해보고 싶었죠.”

조 대표에게 시스코는 낯선 직장이었다. 특히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오후 6시 전에 ‘칼퇴근’하고,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 문화가 충격이었다. 액센츄어 시절엔 밤 12시 전에 들어가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일에 치여 살았다. 시스코의 문화에 적응한 것은 지사장을 맡고 1년 정도가 지난 후다. “시스코 업(業)의 본질은 네트워크더라고요. 네트워크 장비를 판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연결만 돼 있으면 일하는 데 문제가 없어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세상을 이끈다는 믿음이죠.”

2년 반가량 지사장을 지낸 그는 2011년 삼성전자 모바일, 네트워크 장비 기업 간 거래(B2B) 부문을 총괄하는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5년간 일하며 가전, 휴대폰 등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기반으로 성장한 삼성전자가 통신장비 분야에서 B2B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를 떠난 뒤 ‘친정’ 시스코를 비롯해 몇몇 글로벌 IT기업으로부터 지사장 제의가 왔다. “첫 지사장 당시 동료였던 어빙 탄 시스코 아태지역 대표의 적극적인 설득에 이어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는 한국 직원들의 연락도 이어졌어요. ‘지사장 재수’를 기쁘게 받아들였죠.”

“영업인은 고객의 이야기 끌어내는 사람”

조 대표 취임 이후 시스코코리아의 위상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 사업 위주이던 시스코코리아는 영상회의 솔루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점유율을 높였다. 조 대표는 “시스코코리아의 시스템 엔지니어들은 국내 어떤 IT기업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역량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달변가인 그는 영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경청’을 꼽았다. “영업은 고객과의 관계, 가치있는 제안서, 가격이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입니다. 훌륭한 영업인은 본인이 많이 말하지 않아요. 질문을 던져 고객의 이야기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비즈니스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다. 개인기에 의존하는 영업인은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사업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회사의 투자 여력뿐 아니라 사장, 본사 임원까지 내 사업에 끌어들이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걸어다니는 맛집 빅데이터’

조 대표의 좌우명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즐기자(Work hard, play hard)’다. 근무시간에는 일에 전념하고 저녁, 주말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한다. 영업에 필수인 식사자리, 골프 라운딩에서도 일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다. “일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귀한 시간을 투자하는 자리입니다. 동석한 사람과 최대한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저 스스로도 재충전이 되고 장기적으로 사업에도 도움이 되죠.” 그가 휴대폰에 전국의 다양한 맛집 정보를 저장해둔 것도 식사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함이다. IT업계에서는 ‘걸어다니는 맛집 빅데이터’로 불린다.

조 대표의 목표는 회사를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하는 하드웨어 기업에서 ‘보안기업’으로 변신시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클라우드, 영상회의가 급격하게 확산하는 올해를 국내 사이버 보안 시장 진출의 원년으로 꼽고 있다. 조 대표는 “기술적 우위와 적극적인 투자로 한국 보안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 조범구 시스코코리아 대표

△1961년 서울 출생
△1984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1986년 KAIST 산업공학 석사
△1989년 액센츄어 입사
△2008년 액센츄어 아태지역 첨단전자사업부 대표
△2009년 시스코코리아 대표
△2011년 삼성전자 글로벌센터 B2B 사업팀장
△2016년 시스코코리아 대표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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