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연간 생산량은 약 38만4000t이다. 국민 1인당 7㎏을 먹는다. 토마토 1㎏ 평균 가격은 약 2200원(전년 기준)이다.
8일 강원도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찰토마토 1박스(4㎏)를 7000원에 팔기로 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강원마트'와 자체 온라인 판매 채널 '진품센터'를 통해 3주간 8회에 걸쳐 판매한다. 첫날인 8일 오전 10시 두 사이트에서 풀린 1500박스는 모두 소진됐다. 매진에 걸린 시간은 41초다. 8회에 걸쳐 판매되면 강원도 춘천 지역에서 재배한 토마토 40t이 이 행사를 통해 소진될 예정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강원도 농산물 직거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원도의 겨울 저장감자 가격이 폭락했을 때 온라인으로 감자 2000t을 완판 시켰다. 코로나19로 외식과 급식, 수출길이 막히자 최상급 아스파라거스 20t도 순식간에 팔아치웠다. 주문이 폭주하면서 감자와 티케팅을 합친 '포켓팅'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싸게 사는 건 '착한 일'일까 소비자는 좋다. 경제적 이득이 크다. 마트에서도 요즘 토마토 1박스에 1만2000~1만4000원인데, 반 값에 살 수 있다. 기분도 좋다. 선의로 기획된 행사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농가를 돕는 착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뿌듯할 수 있다. 토마토의 판매 수익은 모두 농가에 전달되고, 택배비와 포장비용 3000원은 강원도가 농가에 별도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게 있다. 소비자와 강원도는 과연 '착한 일'을 한 걸까.
한 번의 클릭 성공으로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득템'한 소비자가 기뻐할 동안 사실 수 많은 농가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강원도 외 지역에서 아스파라거스를 30년 이상 농사 지어온 한 농부는 '반값 아스파라거스 행사'를 지켜 보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그는 "직거래망을 열심히 만들어 택배비 포함 1㎏에 1만5000원에 상품을 팔아왔는데, 소신껏 지켜 온 합당한 시장 가격이 지자체의 이벤트에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이 농부는 "직접 농사 짓고, 가공품을 만들어 팔 때 단 한 번도 할인 판매를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재고 관리에 실패해 3개월 이상 유통기한이 남은 아스파라거스 '상품'이 있을 경우 사실을 모두 공지하고 할인 판매를 몇 차례 해 봤으나 소비자들은 오히려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정상 제품을 제 값 주고 사길 선호했다고도 한다.
(참고로 아스프라거스 농가 직거래 가격은 택배비를 포함해 1㎏에 1만5000원, 당시 강원도가 기획한 '반값 아스파라거스'는 7000원이었다. 그때는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제철'이기도 했다.)
농장 각각이 만들어놓은 직거래망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서 강원도 지역 외 농민들은 소비자들과 중간 유통사들이 터무니 없이 가격을 내리라고 할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소비자와의 직거래가 나쁜 것은 아니다"면서도 "아스파라거스 생산자들끼리 한 해 한 해 생산조직을 꾸리고 농민단체 스스로 생산량과 가격을 조절하는 시스템으로 수요와 공급의 합리적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시스템을 지원해야 할 공공부문이 직접 시장 가격을 교란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다.
○문순C의 위험한 '반값 행진' 산지직송은 '농가 직송'일 경우 기본적으로 모든 작물 생산자에게 도움이 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택배비가 붙기 때문에 (대량 구매를 하지 않는 경우라면) 마트 판매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농가가 소비자의 문앞까지 신선하게 농산물을 저장, 포장, 유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100% 농가 직송과 산지 직송 시스템을 만들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농가 중에는 가격 등락폭 신경쓰지 않고 '계약 생산'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도 제조사도 연간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 받고 싶고, 농가도 시세 폭락과 폭등에 상관 없이 안정적으로 생산품을 100% 다 매입해 주는 바이어를 찾고 있다. 지난 30년간 국내 계약재배 면적은 3배 증가했다. 전체 농업 생산의 50%를 차지한다.
강원도는 중간 도매상이 폭리를 취하고 있어 농가 소득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농산물이 가락시장 등 도매시장에 모였다가 나가는 과정에서 가격이 왜곡되기 때문에 유통을 단순화해 농민들이 유통망에 종속되는 걸 막을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이런 이벤트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농산물 거래도 엄연히 시장이다. 만약 과잉 생산으로 문제가 됐다면 해당 농가들이 손해보는 만큼의 소득을 보전하고, 1년 또는 2년 간 작물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휴경 조건 등을 내거는 게 공공 부문의 할 일이라는 것. 유통망이 막혔다면 플랫폼을 (경기도처럼) 자체 판매망을 만들고 도가 이를 홍보해주는 차원이어야 하는데, 특정 작물을 도가 나서서 가격을 정해 판매한다는 것이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강원도가 이번에 판매하는 40t의 토마토는 사실 중견 토마토 농장 1곳의 월 생산량 정도다.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을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원금 지급 방식도 문제다. 지자체가 판매의 통로가 될 경우 지자체에 또다른 권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강원도의 한 농가 관계자는 "지금도 지역 유지, 이장 등 기관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받기 위해 로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며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이벤트는 농촌을 정치판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농촌 혁신, 점점 사라질 것" 지금부터는 합리적 상상이다. 2만원짜리가 어느 날 1만원이 됐다고 치자. 소비자들은 이제 2만원짜리 토마토에 지불하는 돈은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농가들은 더 낮은 생산비로 토마토를 재배해야 하는 압박에 빠진다. 품질은 당연히 낮아질 것이고, (생산비는 낮추고 생산량은 늘릴 수 있도록) 농약과 비료 등의 사용량도 증가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고품질의 차별화된 토마토, 생산비가 조금 높아도 더 건강한 땅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해온 농부들은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시세가 폭락해도, 경기가 좋지 않아도 지자체가 나서서 '반값'에 다 팔아주고 나머진 보조금으로 지급해주는 농촌. 더 좋은 품종, 더 우수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개발할 이유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포도값이 폭락했을 때 등장한 1송이 2만원짜리 '샤인머스캣'의 기적, 멜론이 넘쳐나는 계절에 남다른 품종을 개발해 6월 한달 간 완판 행진을 하는 춘천의 '하니원멜론' 같은 혁신은 더 이상 필요없어질 것이다.
강원도는 '반값 농산물'을 위해 도 예산 70억원을 썼다. 다른 지자체의 한 농민은 "보조금을 살포하는 방식이면 다른 지역 농민들은 가격 경쟁을 할 수 없고, 다른 지역 농민을 절벽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소비가 멈춘 것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농협과 함께 직거래 채널을 만들어 더 많은 품목의 산지 직송 실험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