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공평동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앞.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 노조가 설치한 천막이 인도 한쪽을 버젓이 차지하고 있었다. 천막 앞엔 ‘금호문화재단 박삼구가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내용의 포스터까지 붙었다. 하청업체 청소 근로자 고용 문제를 아시아나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소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있는 아시아나케이오는 금호아시아나재단의 자회사다.
노조가 설치한 천막은 ‘불법 시설물’이다. 서울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집회·시위 금지구역으로 설정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서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는 20명을 투입해 시위용 천막을 철거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공무원들이 돌아가자마자 천막을 다시 세운 노조 측은 “구청과 경찰이 폭력진압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오너 정조준한 시위 많아기업을 겨냥한 시위와 집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불법 시위가 많아서다. 오너 개인을 정조준한 시위가 많다는 점도 시위대에 대한 여론이 싸늘해진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2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택 앞에서 술을 마시며 삼겹살까지 구워먹은 시위 참가자들의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여론이 한층 확산되는 모습이다. ‘삼겹살 폭식투쟁/음주가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에는 임미리 고려대 교수 등 삼성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10여 명이 이 부회장 집 앞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 담겼다.
‘삼겹살 폭식투쟁’ 영상이 올라온 ‘연대TV’ 채널에는 도 넘는 시위를 지적하는 댓글이 다수 올라왔다. 집 앞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자 결국 채널 운영자는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 하지만 연대TV는 다음날인 25일 또 다른 영상을 통해 “이재용 집 앞에서 맥주에 삼겹살 먹은 게 별일입니까? 우리는 위축되지 않습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 부회장 자택 앞 ‘삼겹살 시위’처럼 대기업 오너를 정조준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오너의 출근길에 찾아가 기습 시위를 벌이거나 집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게 전형적인 행태다. 지난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집 앞에서 벌어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금속노조 시위, 2018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자택 앞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원 시위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올 들어서도 오너를 노린 시위가 심심찮게 열리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제과 전 가맹점주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출근하는 신 회장 앞에 나타나 구호를 외쳤다. 해지된 가맹계약을 복구해 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계약 당사자인 롯데제과가 아니라 롯데지주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인 것을 두고 오너 눈에 띄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오너를 겨냥해 시위를 해야 ‘빨리 합의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는 논리다.
집 앞 찾아가 “배드민턴장 지어달라”배드민턴장 무상 건설을 요구하는 적폐청산국민운동도 서울 한남동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자택과 서울 반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 회장 자택 앞에서 벌어진 집회만 일곱 차례다.
이마트 월계점 부지에 배드민턴장을 지어달라는 게 시위대의 요구다. 이마트 월계점은 신세계가 옛 성신양회 부지를 매입한 자리다. 이후 법인 계열분리를 통해 신세계에서 떨어져나온 이마트가 관리하고 있다. 배드민턴 동호회 측은 성신양회가 땅 주인이었을 때 배드민턴장이 있었으니 부지를 매입한 신세계·이마트가 다시 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폐청산국민운동은 배드민턴 동호회와 관련없는 단체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방법이 없다고 반박한다. 배드민턴장을 조성하고 싶어도 구청에서 행정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2015년 동호회 측과 시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했음에도 이들이 최근 또다시 시위에 나섰다는 게 회사 측 주장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시위대는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맹목적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며 “다른 시민들의 자유도 존중하는 시위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집회시위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빈/송형석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