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에 따라 '국채발행으로 재정건전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해석될만한 발언을 청와대 경제수석이 했다. 뉴스가 나온지 열흘이나 지났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의아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릴 예정이어서 재정건전성과 국가채무비율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지난 14일 보도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의 발언은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대상 강연에서 나왔다. 참석자들 전언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고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 비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국채발행도 감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수석은 앞으로 3차 추경 등에서 국채발행이 필요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재정건전성' 문제를 중간에 끼워넣으면서 말이 꼬인 듯 하다.
상식적으로 국채발행, 특히 적자국채 발행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물론 재정건전성 지표인 국가채무비율은 대개 GDP 대비로 산출한다. 분모에 GDP가 들어가고, 분자에 국가채무가 자리잡는다. 이 수석은 '국채발행은 분자(국가채무)도 늘리지만, 동시에 분모(GDP)도 증가시킨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따져 봤다. 과연 국채발행을 통한 재정정책이 GDP 증대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재정건전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 들여다봤다.
◆'크다, 작다' 말하기 어려운 승수효과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 중 조세 부분(감세정책)은 빼고 재정지출 쪽(확장적 재정정책)만 살펴보자. 재정지출 확대가 어느 정도로 경기에 보탬이 되는지, 어느 정도로 GDP 증대에 기여하는 지는 두가지 변수가 좌우한다. 바로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와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다. 정부지출 확대는 직접 GDP를 늘리는 데 이어, 2차적으로 민간소비·금리·투자·물가·환율·수출입 등에 영향을 미쳐 GDP를 증감시킨다. 시장금리를 높여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고, 결국 GDP 증대 효과가 반감된다는 게 구축효과다. 승수효과는 이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저금리 기조를 굳히고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한 데 이어 최근엔 '제로(0)금리'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꺼내든 지경이다. 더이상 쓸 통화금융정책 수단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라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재정지출 확대책이 승수효과는 커녕, 장기적으로 보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도 오바마 정부의 재정팽창패키지(2009년)를 놓고 학계에서 재정지출 승수 크기에 관한 논쟁이 불붙었다. 로머·번스타인 교수는 당시 재정지출 승수가 '1.6' 이었다고 주장한 반면, 배로 교수는 "평화 시기엔 '0'에 가깝다"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예를 들어, 해당 패키지 지출을 100조를 늘렸을 경우 로머 등은 GDP가 160조가 됐다는 얘기인 데 반해, 배로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추정한 재정지출 승수도 최소 0.1(고소득층 1년 감세)에서 최대 2.5(연방정부의 재화·서비스 구입)에 이르는 등 편차가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2년 이런 발표를 했다. "미국과 유럽의 34개 논문을 광범위하게 살펴봤지만, 재정지출 승수 크기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했다.
◆국책연구소는 '0.5' 정도로 추정국내에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2017년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재정지출 승수 크기가 3년간(2013~2015년) 누적으로 '0.513'이란 수치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실질 총지출을 1조원 늘릴 경우, 3년 뒤 GDP가 누적으로 5130억원 늘어난다는 얘기다.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1'에도 못미친다는 분석 결과다.
연구원은 그 이유를 한국의 높은 대외의존도에서 찾았다. 정부지출 확대가 국내 수요 증가를 불러오면 수입수요도 동시에 늘어난다는 것이다. 생산을 위한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은 물론, 최종 소비재 수입도 증가한다. 또 지출 확대로 금리가 올라가면 원화가치는 높아지고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재정정책의 효과를 해외로 유출시켜버리고, 재정지출 승수의 크기를 줄인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변동환율제를 운영하고, 대외개방도가 높으며, 부채가 많은 나라에서 재정지출 승수가 작다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구축효과와 관련해서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도 볼만 하다. 이 연구원은 2013∼2019년 2분기까지 자료를 기초로 재정지출 승수와 감세(세금감면) 승수의 크기를 비교했다. 감세 승수는 4분기 누적 평균 1.02로 나타났다. 세금을 100원 줄이면 연간
GDP가 102원 증가한다는 뜻이다. 반면, 지출 승수는 4분기 누적 평균 0.58로 나타났다. 감세정책은 재정지출 확대에 비해 민간 경제활동을 구축하는 효과가 적다. 이 차이 만큼이 구축효과 때문일 수 있다.
◆재정건전성, 아직 '금과옥조' 맞다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는 상식과 많이 닿아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의 얘기가 지닌 허점도 보여준다. 보고서 중에는 공공질서·안전, 국방, 국토·지역개발 등 정부 투자 형태로 나가는 정부지출의 승수효과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내용이 나온다. 반면 사회복지·보건 등 민간에 정부자금을 '이전'하는 형태의 정부지출은 그 승수효과가 적었다.
전대미문의 수요절벽 앞에 폐업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소상공인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실업자 등을 위해 긴급재난지원이 필요하지만, 그런 정부지출에 초점을 맞춰 국채를 발행하면 GDP 증대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정부 지출이 성장 잠재력 높은 분야의 투자가 아니라 이른바 '공공 알바'를 늘리는 식으로 대량 투입된다면 이 수석이 기대하는 GDP 증대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민간활동에 대한 구축효과까지 감안하면 적자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가 과연 재정건전성을 높여낼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2019년 본예산에서 740조8000억원 규모로, GDP 대비 37.1%에 이른다. 이게 1·2차 추경을 거쳐 41.4%까지 높아졌고, 3차 추경 규모에 따라 45%대까지 급격히 높아질 우려가 크다. 여기에 공기업 채무까지 합하면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은 70%대에 이른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작년 말 한국의 가계부채(1827조원), 기업부채(1954조원) 등 민간부채도 막대한 규모다. 불안을 더하는 것은 부채의 증가속도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증가속도는 세계 주요 43개국 중 각각 4위라고 한다. 국가채무는 6위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재정건전성을 말그대로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경제운영 원칙이 돼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국가채무비율이 110%라고 하지만, 우리는 미국, 일본, 유럽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주변부 비(非)기축통화국'이다. 재정건전성이 취약해지면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고, 어느 순간 외국인들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지는 '코리아 엑소더스'가 벌어질 수 있다. 외환시장이 일대 불안에 휩싸일 수 있다.
'국가채무비율 40%가 무슨 절대준칙이냐'고 현 정부 인사들과 관변학자들은 주장하지만,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경제운영에서 균형감을 잃다 보면 재정악화가 발등의 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