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걸리던 세균성 질환 감염 여부를 1시간 내 알려주는 장난감 형태의 소형 진단기구가 개발됐다.
기초과학연구원 첨단연성물질연구단 소속 조윤경 UNIST(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는 세균 감염 여부를 이같이 신속하게 알 수 있는 '피젯 스피너(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소형 장난감)' 형태의 진단키트를 개발했다고 19일 발표했다.
감염성 질환 진단은 보통 세균을 증폭시키는 배양 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이 검사가 큰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시료(혈액, 소변 등)를 보내고 분석 후 받는 과정 등을 합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 통상 일주일 가량 걸린다. 이 기간동안 1차 의료진은 환자의 증상만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정확한 세균 종류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같은 처방이 항생제 내성을 높이는 주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조 교수팀은 적은 힘으로 빠르게 오래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에 착안해 이런 형태의 미세유체칩(극미세한 관 안에서 시료를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칩)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시료가 회전할 때 세균이 농축되도록 이 기기를 설계했다. 소변 1㎖를 기기에 넣고 5분 가량 1~2회 돌리면 필터 위에 세균이 100배 이상 농축된다. 그리고 필터에 특정 시약을 넣고 45분간 기다리면 세균의 농도를 주황색으로 표시해준다. 이 과정에선 세균의 종류는 알 수 없고 세균 감염 여부만 알려준다.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세균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면, 다른 새 기기에 시료와 항생제를 넣고 돌린 뒤 역시 45분간 기다리면 세균이 살아있는지 여부를 색깔로 파악할 수 있다. 내성이 있다면 살고, 없다면 죽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시플로플록사신과 세파졸린 2가지 항생제를 갖고 이같은 내성 표시 기능을 확인했다. 균은 대장균과 황색포도상구균 2가지를 이용했다.
연구팀은 인도 티루치라팔리 시립병원에서 이번에 개발한 기기의 성능을 증명했다. 자원자 39명을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세균 감염 여부가 1시간 내로 나왔다. 연구팀 관계자는 "현지의 일방적 처방으로는 54%에 달했을 항생제 오남용 비율을 0%로 줄일 수 있음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검사 결과 실제 항생제가 필요한 환자는 39명 중 18명(46%)이었고, 나머지 21명(54%)은 항생제가 필요 없는 질환이었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물로 아프리카 등 오지(奧地)에서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포스텍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어배너샴페인캠퍼스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UNIST에 부임하기 전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10년간 일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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