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일 금값이 오르자 아이들 돌반지를 파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금값은 얼마 전 금거래소 개장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안전 자산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여파다. 그깟 누리끼리한 쇠붙이가 뭐라고 다들 난리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이 노란색 쇠붙이에 묘하게 매력을 느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금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 중 하나가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의 이야기다.
“음주가무의 신 세일레노스가 술에 취해 프리기아의 왕인 미다스의 장미 정원에 쓰러진다. 이를 발견한 미다스는 그를 데려다가 열흘간 극진히 모시는데, 이에 감복한 세일레노스의 양아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에 미다스가 자신이 손을 대는 무엇이든 금으로 변하는 능력을 달라고 하고, 그의 소원은 이뤄진다. 미다스는 매우 기뻐했으나 곧 그의 능력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임을 깨닫는다. 음식조차도 손만 대면 금으로 변하는 통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된 미다스에게 그의 딸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그런 딸에게 손을 대는 순간 그녀 역시 금덩어리로 바뀌고 만다. 결국 미다스는 디오니소스를 찾아가 자신의 능력을 없애달라고 하고,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파크톨루스 강물에 손을 씻으면 그의 능력이 씻겨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미다스가 디오니소스의 말대로 하자 파크톨루스 강바닥의 모래가 모두 금으로 바뀌면서 정말로 그의 능력은 사라졌다.”
과한 욕심에 경종 울리는 허구?
손만 대면 모든 게 금으로 바뀐다는 미다스의 이야기는 물론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었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역사서에서 접했을 테니까. 이를 그저 인간의 과한 욕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허구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옛날부터 사금이 많이 나온 파크톨루스 강은 오늘날의 터키 서부에서 에게해로 흘러들어가는, 고대 소아시아 리디아 왕국 경제력의 주요 자원이었다. 그렇다 보니 손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변하게 하는 상상의 힘을 가진 자가 파크톨루스 강에 손을 씻어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지어낼 법하다. 여기서 의문은 ‘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리디아가 아니라 인접국 프리기아의 왕이 됐을까’ 하는 것이다.
미다스는 기원전 800년대 초반부터 700년대 후반 프리기아 왕국에 실존했던 왕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역사적 시대구분상으로는 철기시대지만, 구리의 합금인 청동도 널리 사용됐다. 미다스의 선대왕 고르디아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은 청동 벨트를 맨 채로 발굴되기도 했다. 청동(靑銅)은 구리와 주석을 주재료로 하는 합금을 말한다. 순수한 구리는 너무 물러서 식기나 무기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금속과 섞어 합금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중 가장 흔한 게 주석과 혼합한 합금이었는데, 녹이 슬면 박물관의 청동기 전시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르스름한 색을 띠어 청동이라고 한다. 청동은 녹이 슬기 전에도 다소 칙칙한 갈색을 띠는데, 청동은 누가 봐도 헷갈릴 수 없는 청동이다.
신화화한 황동·사금 이야기일 수도
그런데 구리에 주석 대신 아연을 섞으면 청동과 전혀 다른 합금이 생성된다. 프리기아 지역에는 특히 아연이 많았는데, 주석 광석에도 아연이 상당량 섞여 있었다. 당시로서는 주석과 아연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이 없었기에 프리기아 사람들이 제련한 청동에는 구리와 주석, 아연이 일정하지 않은 비율로 섞여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아연을 구리에 섞어 만든 합금이 바로 황동(黃銅)이라고 하는 물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황동은 이름이 암시하듯이 노란빛을 띠어 금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를 금동(金銅)이라고도 한다. 황동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구글에 ‘황동’이라는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터키 앙카라대의 한 연구팀은 역사학자들과 공동으로 미다스왕 시절에 사용됐을 법한 화로를 제작했다. 그리고 프리기아 지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던 구리와 주석·아연 광석을 녹여 합금을 제조해 봤다. 그렇게 만들어진 합금은 실제로 금빛에 가까운 황동이었다. 미다스에게는 금이 아니라 아연이 있었던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며 밀도의 개념을 깨닫기 훨씬 전이었으니, 그리스인들이 황동과 금을 헷갈렸다고 하더라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소아시아를 넘나들던 그리스 상인들이 본국에 가서 전한 미다스의 황동과 파크톨루스 강의 사금 이야기가 합쳐져 전해지다가 미다스의 신화가 탄생한 건 아닐까? 이 신화를 과한 욕심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만 읽는 대신에 과학과 역사의 합작품으로 상상해 보며 다시 읽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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