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을 다 보네요.”
요즘 국내 프로 스포츠계에선 이런 말이 자주 오간다.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야구, 축구 등 주요 스포츠를 잇따라 재개한 이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긴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국 프로 야구와 프로 축구를 세계 유력 스포츠 매체가 매일같이 생중계하고, 해외 팬들이 SNS로 “한국 야구의 오묘한 매력, ‘빠던’”을 공유하는 게 일상이 되는 날을 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K스포츠’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줬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한국 스포츠 관광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해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프로 야구가 불붙인 해외 팬들의 관심은 프로 축구에까지 옮겨붙고 있다. 중국, 크로아티아 등 해외에서 K리그를 보는 나라가 36개국에 달한다. 앞서 미국 전역 생중계를 시작한 프로 야구는 이미 현지에 ‘K베이스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선 NC다이노스를 노스캐롤라이나 다이노스라고 부르는 팬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이 1997년 외환위기를 박찬호의 야구경기를 보며 넘었듯이 외국인들도 코로나19가 가져온 공포와 무력감을 K스포츠로 달래는 셈이다.
국내 스포츠계도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일부 경기를 영어 해설·자막을 곁들여 유튜브와 트위터로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 여행업계에선 라리가(스페인 프로축구)나 메이저리그 직관(직접 현지 관람) 여행 패키지처럼 K스포츠를 관광 상품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한 여행사 대표는 “코로나19가 만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잘 살려 두터운 해외 팬층을 확보한다면 ‘잠실 야구장’ ‘상암 월드컵 경기장’ 게임을 직관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스포츠가 관광산업의 싹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8년 대만 출신 투수 왕웨이중을 NC다이노스가 영입하자 연고지 창원을 찾는 대만 팬의 행렬이 이어졌다. 창원시 관계자는 “2018년 군항제 때 외국인 방문객은 2017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25만여 명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산업을 운운할 만큼 이런 일이 확산되지는 못했고, K스포츠는 국내용에 머물렀던 게 현실이었다. 지금의 K스포츠 열기가 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만만치 않게 나오는 배경이다. “메이저리그와 프리미어리그가 세계적 인기를 끄는 건 언제든 드라마를 연출하는 그들의 탁월한 실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면, 관건은 K스포츠를 ‘글로벌 맛집’으로 만들 수 있는 우리식 메뉴 개발이다. 국내 스포츠의 매력을 일찍이 경험한 외국인들은 ‘떼창, 치맥’ 등 한국만의 스포츠 문화 때문에 직관족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출신 영어 강사인 셰인 익스 씨(31)는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고 부르는 연안부두 떼창에 반해 SK와이번스 팬이 됐다”고 말했다. 흥겨운 응원문화와 경기를 보면서 먹는 치맥(치킨+맥주) 문화에 빠져 주말마다 야구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열풍은 이제 시작됐고 시간은 많지 않다. 바람이 금세 잦아들지 않게 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록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응원 문화가 스포츠판 ‘방탄소년단’의 열기로 뒤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soonsin2@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