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더 이상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부회장이 피고인으로 재판받고 있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는 재판은 물론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수사와도 맞닿아 있다. 이 부회장이 5년만에 공식석상에서 한 사과가 여론 형성 및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이날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삼성은 승계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았고 최근에는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며 "앞으로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삼성 내부의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해서도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 준법감시위는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며 "그 활동이 중단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삼성 준법감시위가 삼성측에 사과를 요구한 ‘경영권 승계'와 '노조', '시민사회 소통’ 관련 사안 중 경영권 승계 문제는 이 부회장의 뇌물·횡령 혐의와 직결돼있다. 작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코어스포츠에 준 용역대금 36억여원 외에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준 34억원 상당의 말 세 마리, 동계영재스포츠센터 지원금 16억원 등을 모두 뇌물로 인정했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각종 현안에 대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지난 10월 첫 공판에서 삼성 측에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 8장을 참고해 삼성그룹 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특별검사측은 "해당 규정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집행유예 제도와 같고, 담당 부장판사는 양형 심리와 관련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예단을 갖고 있다"며 두 차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준법감시위 설치 등이 사실상 유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다.
특검의 첫 번째 기피 신청은 지난달 17일 기각됐다. 재항고 건은 대법원이 현재 심리 중이다.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은 기피신청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다.
법조계선 재판부가 요구한 준법감시위의 사과 권고를 삼성이 받아들인 만큼 이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서는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었을 때 5년 이상 징역형을 내리지만 재판부 재량으로 2년6개월까지 감형이 가능하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형에 대해 가능하다.
재경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대국민 사과'는 법정 자백이나 진술과는 달리 양형사유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여러 측면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은 법원 재판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도 관련이 깊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일어난 분식회계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편의를 위해 벌어진 일로 보고 있다.
차장검사 출신의 모 변호사는 "이 부회장측도 수사상황을 고려해 입장문을 발표했을 것"이라면서도 "검찰 입장에선 크게 신경쓸만할 사안으로 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