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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범의 별 헤는 밤] 금성과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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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 천문대가 벌써 더워졌다. 불과 2주 전엔 영하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갑자기 섭씨 20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해마다 4월이면 보름 정도는 화려한 벚꽃이 출근길을 즐겁게 해줬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인지 올해는 이상하게 벚꽃 기억이 없다.

칠레,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에 있는 세계적인 천문대가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국내의 천문대는 관측을 이어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우리가 관측해서 결과를 보내주는 서비스 관측을 하기도 하고, 관측자가 찾아오면 제일 먼저 발열검사를 하고 마스크를 제공하고 있다. 점점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지만 천문대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가급적 대면 회의를 자제하고, 전시관도 문을 닫은 상태다. 점심 후의 산책길에 산길을 벗어나 불쑥불쑥 나타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직 조금 이른 듯한데 천문대 주변으로 산나물을 채취하러 온 사람들이다. 종종 꽃 사진을 찍는 사람과도 마주친다. 비슷한 연배의 부부가 닫혀 있는 전시관이 아쉬운지 괜히 연구동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8년마다 이뤄지는 밤하늘의 조우

지난 한 달은 천체 관측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사랑의 여신인 금성과 일곱 자매로 유명한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만남은 하늘에 떠 있는 모습으로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 가늠할 수 없다. 이들의 만남은 8년마다 반복되는 현상임에도 천문대 생활 27년 만에 처음으로 관심을 두고 봤다. 금성은 행성이라 매일매일 하늘에서 위치가 변한다. 그러다 보면 달과 만나기도 하고, 다른 행성과 어울리기도 한다.

플레이아데스성단은 맨눈으로 보면 밝은 별 7개 정도가 작은 북두칠성 모습으로 아름답게 보여서 일곱 자매(공주)란 별명을 갖고 있지만 날씨에 따라 몇 개가 더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별이 촘촘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연상해 좀생이별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는 많은 별이 느슨하게 모여 있는 별의 집단인 산개성단이며, 일곱 자매의 밝은 별들은 아름답고 푸른 반사성운에 둘러싸여 있다.

해가 지고 아직 여명이 밝은 하늘에서도 밝게 빛을 내는 금성을 찾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일곱 자매의 모습은 하늘이 훨씬 더 어두워져야 보인다. 그저 밝고 아름다워 보이는 금성의 실제 모습은 의외로 초승달 형태다.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데 지구보다 안쪽에서 도는 행성을 내행성이라고 하며 금성과 수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의 좌우로 멀어져서 초저녁이나 새벽에 높게 떠오를 때면 햇빛을 받는 면적이 좁아져서 초승달 형태를 띠는 것이다.

보현산 천문대에는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디서나 원격으로 관측할 수 있는 작은 망원경이 한 대 있다. 구경 155㎜ 굴절망원경인데 주로 산개성단 내의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을 찾거나 단일 변광성의 특성을 연구하기 위한 관측에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CCD 카메라가 붙어 있어서 경통에 별도로 카메라를 부착해 200~500㎜의 망원렌즈로 별상이 흐르지 않게 추적 관측을 했다. 동시에 밖에서는 인터벌 촬영으로 일주운동 사진을 만들기도 하고, 이들을 이용해 흐르는 금성과 플레이아데스성단이 같이 흐르는 동영상도 만들었다. 또 광각렌즈로 주변 풍경을 같이 넣는 등 다양한 사진을 담았다.

금성의 실제 모습은 초승달 형태

주중에 내내 관측하고, 금요일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토요일 저녁에도 기록해야겠다는 강박에 부지런히 천문대로 다시 올라갔다. 하지만 불과 몇 장을 얻고 나니 구름이 몰려와서 하늘을 덮었다. 일요일엔 아예 월요일 근무 준비를 해 이르게 천문대로 출발했다. 천문대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러 곳에서 풍경을 넣은 금성과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만남을 기록했고, 천문대에 올라 밤새 사진을 찍었다. 이런 시간이 천문학자로서 누리는 기쁨이다. 관측을 할 때면 정신없이 빠져들어 일상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코로나19도 천문학자의 시간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냈는데 이번엔 바뀐 1.8m 망원경 관측 일정을 잘못 알고 있어서 다시 관측에 나섰다. 그것도 곧바로 월요일부터였다. 날씨가 좋아 3일 밤을 꼬박 새우고 나니 마지막 4일째는 날씨가 안 좋은 게 오히려 반가웠다. 그런데 무리한 관측 일정 탓인지 주말 내내 몸이 안 좋았다. 며칠 휴가를 내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월요일 아침이 되니 한결 좋아졌다.

매년 봄이면 출퇴근에 따른 일교차가 너무 크고, 밤을 새우는 횟수가 늘어서 한 번씩 몸살을 앓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아직 심한 몸살을 한 번도 안 겪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만 빼면 오히려 훨씬 더 건강하게 지낸 듯하다. 코로나19 시대의 자화상일까? 생활방역이 어느 수준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비하는 자세는 이미 일상화된 듯하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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