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출범한 에이스침대는 국내 최장수 침대 업체로 국내 침대산업의 역사를 대변한다. 한국에 침대 문화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제대로 된 스프링 침대를 생산하기 위해 손으로 직접 강선을 감아가며 기술을 개발해 국내 침대시장을 키워왔다.
산업화와 함께 회사도 성장했다. 1960년대 서울 반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197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침대 수요가 늘어났다. 에이스침대는 1988년 서울올림픽 선수촌에 침대를 납품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 침실 문화는 온돌에서 침대 중심으로 빠르게 변했다. 1990년대 초반 입주를 시작한 경기 성남시 분당 등 1기 신도시 신축 아파트에 집중적으로 팔렸다.
에이스침대는 창업 초기부터 품질관리와 기술 개발에 집중해왔다. 1970년대 후반 품질관리실이라는 부서를 신설하고 모든 업무를 표준화, 문서화하며 에이스침대의 회사 규격을 세웠다. 1992년에는 첨단 시험설비를 갖춘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2006년 국내 침대업계 유일의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1990년대 유행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에이스침대의 전문성을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당시 가구업체들이 침대를 내놓으며 시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수십 년간 침대만 생산해온 기업으로서 차별화된 기술력과 전문성을 부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체질을 개선했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이자 비용이 급증했고 자재 확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창업자인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은 사재를 털어 급한 불을 껐다. 5년 동안 부채를 갚아 2002년에는 ‘무차입경영’을 선언했다. 지금까지 그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에이스침대는 약 30년간 침대업계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침대업계의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매출 2774억원을 올리며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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