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23일(08:33)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번주 초 국제유가 폭락으로 글로벌 금융상품시장이 다시 공포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부진이 서부텍사스원유(WTI) 6월 인도분마저 ‘마이너스’ 영역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염세주의가 꺾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난생 처음 보는 충격적인 마이너스 유가를 접한 시장의 후유증이 쉽게 가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업 자금조달 시장 한 쪽에선 신용경색(대출 기피) 완화의 ‘햇살’을 느끼게 하는 조심스런 변화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을 모은 미국의 가정간편식(HMR) ‘공룡’ 캠벨수프(Campbell Soup)의 회사채 발행도 그 중 하나입니다. 트레이더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캠벨수프는 지난 20일 10억달러(약 1조2300억원)어치 회사채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나서 '완판'에 성공했습니다.
캠벨수프 채권이 관심을 끈 배경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매긴 신용등급이 ‘BBB-’로 투자적격 10개 단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한 단계만 떨어져도 ‘투자 부적격 전락 기업(fallen angel)’이 되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등급입니다.
깡통 농축수프와 ‘V8’ 브랜드 야채주스 등을 파는 캠벨수프는 이런 상황에서 최근 실적을 넌지시 언급하는 기지(奇智)를 발휘했는데요. 그 내용은 지난 2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수시공시(8-K) 자료에 담겼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훨씬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experiencing significantly higher sales)”는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이 문장의 효과는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관은 캠벨수프에 유리한 이자비용으로 채권을 사주겠다고 모여들었습니다. 결국 10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미 국채(10년물)+1.75%포인트, 30년 만기는 미 국채(30년물)+1.90%포인트로 정해졌습니다. 연간 이자비용으로 따지면 연 3% 안팎에 해당합니다. 비슷한 신용등급 회사채 금리를 훨씬 밑도는 수준입니다.
캠벨수프의 사례는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다시 비우량기업들에 지갑을 열기 위해 최근 실적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치솟던 미 하이일드(투자부적격) 회사채 금리는 지난 달 말을 정점으로 상승폭의 3분의 1 정도를 되돌렸습니다. 금리 하락은 신용경색의 완화를 뜻합니다. 굳이 ‘코로나19 수혜 종목’이 아닌 비우량 기업일지라도 자금난을 다소 덜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입니다.
앞으로 쏟아질 코로나19 이후 첫 분기 실적은 이같은 자본시장 흐름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전망입니다. 우려가 과도했다는 판단이 확산되거나 캠벨수프처럼 이례적인 실적개선 기업이 적지 않다면, 시장은 생각보다 빨리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갈지 모릅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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