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디지털 방식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인증 제도가 있지만, 옛날에는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돌, 대나무, 옥 같은 것을 나눠 만든 부절(符節)을 사용했다. 부절 두 조각이 가진 상관성을 이용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부절을 이용해 양자물리학 이론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여기 항상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두 조각이 있다. 누나 영희와 동생 철수가 한 조각씩 가지고 멀리 헤어졌다. 영희가 가진 조각이 위를 가리키면 철수 것은 아래를 가리키고, 영희 것이 아래이면 철수 것은 위일 것이다. 뉴턴 이래 고전적인 물리학자들이 믿어온 바에 따르면 위인지 아래인지는 측정하기 전에 이미 결정돼 있고, 측정은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을 읽어낼 따름이다. 그에 비해 새로운 양자물리 이론에 따르면 측정하기 전에는 결과가 결정돼 있지 않고 갖가지 결과가 나올 확률만 정해져 있다. 결과는 측정에 의해 결정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확률론적인 양자 측정이 매우 불만스러웠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온 아인슈타인은 1934년 프린스턴에 있는 고등연구소(IAS)에 정착했다. 아인슈타인은 고등연구소에서 젊은 연구원 포돌스키, 로젠 등과 양자물리학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며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영희가 가진 조각이 위를 향하는지 아래를 향하는지를 측정하면 측정 결과는 각각 50%의 확률로 위가 될 수도 있고 아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희의 측정 결과가 정해짐과 동시에 철수가 가진 조각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반대 방향으로 정해질 것이다.
측정 전에는 확률만 정해져 있어
한쪽의 측정 결과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의 상태를 곧바로 결정한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위배되지 않을까?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를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라고 불렀다. 측정 결과가 확률적으로 정해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숨은 변수 이론이 등장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포돌스키가 작성했고 저자는 알파벳 순서대로 해서 ‘EPR’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 논문은 현재까지 5000회 넘게 인용되고 있다. 1935년 이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되기 전 ‘아인슈타인, 양자이론을 공격하다’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에 먼저 기사화되는 바람에 아인슈타인은 학술적인 내용이 비전문적인 매체에 먼저 발표된 것에 매우 분노했다.
양쪽의 측정 결과가 일정한 상관성은 가지고 있지만 측정 전까지 정해지지 않는 것을 슈뢰딩거는 ‘얽힘(entanglement)’이라고 불렀다. 상자 속에 방사성 원자, 독가스 병, 고양이가 들어 있다.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면 독가스 병이 깨지고 고양이는 죽게 된다. 방사성 원자가 언제 붕괴할지 알 수 없어서 방사성 원자의 상태와 독가스 병의 상태, 고양이의 생사는 서로 얽혀 있고,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상자를 열어서 볼 때 정해진다. 양쪽이 같은 결과를 주는 상관성이 있을 경우 이심전심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심전심은 이미 공통 원인에 의해 결과가 정해져 있다. 이에 비해 양자 얽힘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일정한 상관성을 가진 ‘양자 이심전심’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이론 확인한 '벨 부등식 실험'
양자 이심전심, 즉 얽힘의 양자 상관성을 이용해 아무리 멀어도 빛보다 빠른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깨지는 셈이지만, ‘아쉽게도’ 사실이 아니다.
유럽 가속기연구소(CERN)에서 연구하던 이론물리학자 존 벨은 1964년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을 발전시킨 제안을 했다. 영희와 철수가 양끝에서 위아래 방향을 구분하는 측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 대한 측정까지 포함해 부등식으로 수식화했다. 양자 이론이 옳다면 벨의 부등식을 만족시키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 실험한 결과, 얽힘 상태가 벨의 부등식을 위반하고 따라서 양자이론이 옳다는 것이 확인됐다. 양쪽 끝의 측정 결과에 상관성은 있지만, 양자 측정 결과는 의도하는 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원하는 정보를 보낼 수도 없다. 따라서 양자이론도 옳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얽힘을 이용해 원하는 정보를 보낼 수는 없지만 얽힘은 양자암호통신과 양자텔레포테이션 등 양자정보기술에 필수적이고, 고전물리학으로는 불가능한 양자물리학 전유의 현상이다. 그리고 빛보다 빠른 통신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하고, 양자텔레포테이션도 빛보다 빨리 뭔가를 전송하는 것은 아니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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