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는 그동안 공연 영상 서비스에 인색했다. RCO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는 공연 일부 편집본이나 연주자 인터뷰, 홍보 영상 등만 볼 수 있었다. 일찌감치 ‘디지털 콘서트홀’을 구축해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유료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해온 베를린필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랬던 RCO가 지난주부터 연주회 전체 영상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요 공연장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해 공짜로 공연 실황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RCO는 지난주 마리스 얀손스 지휘의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안드리스 넬손스의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니콜라스 아르농쿠르의 브루크너 ‘교향곡 5번’에 이어 지난 13일 다니엘레 가티가 지휘봉을 잡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올렸다. 15일에는 차이코프스키에 정통한 세묜 비치코프가 지휘한 ‘호두까기 인형’, 17일에는 명장 베르나르도 하이팅크가 이끈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을 공개한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본거지인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에서 나오는 풍부한 음향을 바탕으로 탄탄한 연주력을 쌓은 오케스트라”라며 “지금까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할 만큼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준다”고 평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도 ‘방구석 1열’ 관객을 위한 공연 실황 무료 스트리밍에 동참했다. 1904년 창단한 LSO는 2008년 음악전문지 그라모폰 선정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RCO와 베를린필, 빈필에 이어 4위에 오를 만큼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다. LSO는 이달부터 매주 일요일과 금요일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연주회 실황 영상을 한 편씩 올리고 있다.
지난 12일 조성진이 협연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인 데 이어 16일에는 오후 7시30분(현지시각)부터 세묜 비치코프가 지휘봉을 잡은 말러 교향곡 2번을 상영할 예정이다. 소프라노 크리스티안 카르그가 협연했다. 영상은 공개 이후 24시간 동안 볼 수 있다. 유형종 음악평론가는 “‘빅3’ 다음 가는 오케스트라가 하는 공연으로, 말러 교향곡 2번(부활)이란 대곡을 연주한다는 것이 눈여겨볼 만하다”며 “워낙 대곡이라 입문자들이 듣기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필은 지난달 공연 영상 600여 편을 볼 수 있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회원들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원래 지난달 31일까지 회원 가입자에게 가입 시점부터 한 달간 무료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자 서비스 기간을 이달 말까지 연장했다. 회원가입 후 ‘Berlinphil’이란 상품권 코드를 입력하면 한 달 동안 모든 동영상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베를린필은 회원들을 위해 ‘부활절 페스티벌’ 시리즈 등 다양한 신규 프로그램을 제작해 올리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도 지난달 ‘NY PHIL Plays On’이란 이름의 새로운 사이트를 열어 그동안 녹화했던 150여 편의 공연 실황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뉴욕필 음악감독 얍 반 츠베덴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 5번 실황을 올리는 등 연주 영상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별다른 가입 절차 없이 바로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감상할 수 있다.
세계적인 오페라단들도 공연 영상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지난달 16일부터 매일 공연 한 편씩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약 3시간 길이의 오페라를 현지시간 기준으로 오후 7시30분부터 다음날 오후 6시30분까지 23시간 공개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홈페이지에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14일에는 베이스 르네 파페가 주연한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15일에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가 함께 나온 푸치니의 ‘라 론디네’를 올린다.
빈 국립오페라단도 지난달 15일부터 매일 오페라 한 편씩 무료로 공개했다. 15일에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오후 7시부터 24시간 동안 상영한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고 알비스 헤르마니스가 연출한 공연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