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전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7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활동 재개는 단계적으로 할 수 밖에 없고, 상당 기간 경제활동은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신중론을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 3월25일 CNBC 인터뷰에서 "가파르고 짧은 침체는 있지만, 상당히 빠른 반등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180도 다른 시각입니다.
2주만에 경제 전망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그만큼 코로나바이러스가 미 경제에 미친 여파가 크고 깊다는 걸 의미합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이날 브루킹스연구소 주최의 웨비나(Webminar)에서 경제 전망 외에도 인플레이션 전망, 코로나바이러스가 미칠 변화 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는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QE)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조달러 규모의 재정 부양책에도 내년에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을 정리했습니다. 향후 미국 경제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조 발언>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로 타격을 입었다. 경제적 측면으로도 글로벌하게 사업들이 모두 폐쇄됐고 경제활동도 중단됐다. 사람들은 쇼핑이나 일, 학교 가는 것도 어렵게됐다.
일단 금융시장의 혼란은 잦아들었지만 실물 경기 타격은 불가피하다.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30% 이상 위축될 수 있다. 실업률도 단기에 기업들의 해고, 무급휴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높아질 것이다.
이게 얼마나 나쁠 것이냐는 지속 기간(듀레이션)에 달렸다.
더 오래될 수록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더 많은 실업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빨리 회복되기도 어렵다. 이런 듀레이션은 결국 공공 보건정책에 달렸다. 지금 셧다운하는 것은 최악을 막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필요하다. 지금으로선 이게 가장 중요하다.
현 상황을 보면 부분적으로 여름께 경제 봉쇄를 일부 푸는 방안이 유력하다. 하지만 사태가 재발한다면 가을에 다시 폐쇄될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올해는 미 경제에 매우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다. 이번 봉쇄가 얼마나 오래, 또 깊게 진행될 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어려움에 대해 정부와 미 중앙은행(Fed)는 재정,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재정정책은 부양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더 쇼핑하러 갈 수가 없다. 이건 긴급구호다.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월세와 유틸리티 등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기업들이 살아남아서 향후 경제가 다시 열렸었을 때 계속 영업할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2조2000억달러 규모의 구제 패키지는 생존 전략이다.
지금 돈을 건네주는 데 실행(물류)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정책자체로는 적당하다고 본다.
통화정책의 경우 제롬 파월과 Fed의 동료들을 굉장히 칭찬하고 싶다. Fed는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섰다.
Fed가 한 것은 세 가지다. 모두 경제 지지를 위한 것이다.
① 금융시장 기능 회복
작년 가을부터 단기자금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레포(환매조건부채권) 입찰을 운용해왔고, 이번에 바이러스로 혼란이 발생했다. 국채, 모기지 증권(MBS) 등에 이어 레포 확대, 머니마켓 펀드 매입, 은행 재할인 창구 등을 줄줄이 열었다.
중요한 건 국제 금융시장에도 창구를 열었다는 점이다. 국제 거래의 많은 부분이 달러로 일어난다. 달러의 유일한 소스가 Fed다. 그래서 14개 중앙은행과 스와프협정을 맺었다. 이는 미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Fed는 단순히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중앙은행이 됐다. 14개 은행과의 스와프 협정 외에도 다른 국가들이 응할 수 있는 미 국채 레포 시장도 개설했다.
시스템안에 현금 유동성이 충분히 제공되도록 한 것이다.
② 적극적 통화정책
지난해 세 차례 기준금리를 내려 경제를 소프트랜딩시켰다. 그리고 3월 두 차례 긴급 인하해 제로금리로 낮췄다. Fed는 경제가 정상화되고 인플레이션이 2 %로 돌아갈 때까지 기본적으로 금리를 이대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제로금리가 상당기간 오래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양적완화 등 자산 구매에 나섰다.
③ 크레딧 마켓(회사채시장) 개입
크레딧 시장에선 큰 혼란이 발생했다. 위기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Fed는 2008년에 썼던 플레이북뿐 아니라 몇가지 혁신적 방법도 추가했다.
2008년 플레이북에서 따온 방법은 기업어음(CP) 매입, 머니마켓 펀드 유동성 지원창구, 자산담보부증권 대출 기구(TALF) 등이다.
Fed는 Fed법 13조를 동원해 재무부 승인 아래 누구에게나 대출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의 생존을 지원하는 세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두 개는 회사채 발행, 회사채 유통시장에서 회사채를 매입하는 기구이며, 세번째는 '메인스트리트 비즈니스 대출 프로그램'이다. 임직원이 500~10000명인 중기업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소기업은 중소기업청론(SBA)를 통해 받을 수 있다. SBA는 대부분 갚지않아도되는 대출이다. Fed는 또 SBA 대출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들 세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 대출시장에 Fed가 개입했다. 이런 백스톱 역할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그래서 시장은 정상화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특별히 어려운 상황이다. 이건 글로벌 리세션이고, 거기에 강달러, 원자재 가격 폭락과 신흥국 자본이탈 등으로 더욱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현재의 재정, 통화정책에 만족한다. 재정 정책은 추가적으로 좀 더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질의 응답>
(Fed의 자산이 6조달러에 근접하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한계는 없다. 6조달러는 미국 GDP의 30% 정도다. 일본의 경우 80~90%는 될 것이다. 앞으로 일시적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CP 등 단기대출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경기가 살아나면 대출금이 상환되면서 좀 줄어들 것이다.
Fed는 그런 능력이 있고, 지금 비상상황인 만큼 그렇게 해야한다. 아직은 인플레로 인한 위험은 없다고 본다.
인플레이션보다는 지금은 디스플레이션이 더 걱정이 되는 상황이다.
(재정적자의 경우 지속가능한가?)
어려운 문제다. 이건 장기적으로는 인구가 고령화되고 의료 비용이 증가하면서 문제가 될 것으로 본다. 10~20년 뒤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이같은 (증가)경로를 어떻게할 것인가 생각해뵈야한다. 하지만 이건 장기적인 문제다. 지금은 단기적으로 위기를 다룰 때는 재정 확대가 적절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 금리는 제로로 매우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이자 부담이 상당히 낮을 것이란 것을 의미한다. 빌린 돈이 많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제로금리에 수많은 부채가 있다. 인플레가 발생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공급, 수요 측면에 모두 위기가 있다.
어떤 공급망에선 혼란이 발생했고 그런 혼란속에 특정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수요가 매우 감소한 상황이다. 레스토랑-항공 수요 등을 생각해봐라. 사람들이 집에 머물며 저축하고 있다. 정상적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소비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인플레가 아니라 디플레이션 압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국제유가나 원자재 가격을 봐라. 급락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통화 및 재정정책이 단기에 고용을 다 회복시키지 못할 것으로 본다. 그래서 단기 인플레가 Fed 목표인 2%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으로는 인플레를 높은 위험요인으로 보지는 않는다.
(V자 경기 회복을 예상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건 바이러스의 경로에 달려있다. 백신 개발까지 18개월 가량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그 때까지는 경제를 다 열기가 어려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평상시 상황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다시 열면 다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모든게 금방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빠를 것 같지는 않다.
경제 재개는 단계적으로 할 수 밖에 없고, 상당 기간 경제활동은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정상적으로 바로 돌아오기는 어렵다.
나는 이번 사태를 지난 1929년에 발행한 12년 대공황과는 구별하고 싶다. 이 사태가 1~2년에 끝난다면 우리는 (대공황 때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있을 것이다. 나는 완전고용에 다시 도달하는 시간이 대공황때보다는 훨씬 짧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은행의 자사주매입과 배당을 금지해야할까?)
기본적으로 자사주매입과 배당은 나쁜 것은 아니다. 돈이 남으면 주주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 다행인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은행들의 자본이 매우 확충됐다는 것이다.
배당금 지급이 은행 시스템을 해치는 수준이 아니라면 할 수는 있지만, 주의는 해야한다고 본다.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가 대출에 각종 조건을 붙이거나 주식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한가?)
대출과, 그리고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 쪽으로는 보조금이 나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납세자들이 낸 세금이 보호되어야하고, Fed의 자산도 마찬가지다. 대출은 대출이다.
하지만 여러 조건을 붙이면 기업들이 대출을 받지 않으려할 것이다.
몇몇 요건을 붙이는 건 당연하지만, 이번 정책의 핵심은 기업이 살아남아서 위기가 지나간 이후에 제 기능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세금을 다시 돌려받는 것이다.
(이번 사태 이후 소비자 행동 등 경제가 완전히 변화하는 것 아닌가?)
일시적 변화가 영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이런 종류의 불황은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소기업들이 몰락하고 대기업이 더 많은 시장점유율을 갖게될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더 많은 경제력 집중이 이뤄질 수 있다.
또 지금 화상회의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어떻게 원격으로 근무하고 회의할 수 있는 지 배우고 있다. 대인보다 온라인으로 업무방식이 바뀌고 있다. 이건 산업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크루즈 등 여행산업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안전과 건강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운영 방식이 바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차원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18년 스페인독감 등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미국 경제가 송두리째 바뀔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일부 측면에서 바뀔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이 저축할 것 같다. 저금리, 투자 감소 등으로 이어질까. 또 정부의 재정적자는?)
과거 대공황 등을 보면, 사람들은 이후 상당기간 저축을 더 했다. 그런 성향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팬데믹이 매 10년마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건 더 많은 저축과 더 낮은 금리를 가져올 수 있다. 낮은 금리와 저성장은 더 많은 재정적자를 유발할 수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