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지급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긴급재정경제명령 건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황교안 통합당 대표가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은 대통령이 국회 소집을 기다릴 수 없을 때 최소로 발동해야 하는 헌법적 권한이다.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여야가 표를 얻기 위해 반헌법적인 주장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 모두 “대통령 나서라”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동의한다면 (문 대통령에게) 긴급재정경제명령 건의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7일 밝혔다. 이 원내대표의 발언은 코로나지원금 예산을 조속히 편성하기 위해 총선 다음날인 16일 임시국회 소집을 제안하면서 나왔다. 이 원내대표는 “통합당 김종인 선대위원장과 황교안 대표가 이구동성으로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을 주장했다”며 “긴급재난지원금의 성패는 속도에 달린 만큼 민주당은 야당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는 대로 대통령에게 명령 발동을 건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통합당은 “정부가 취약층을 즉각 지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을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라디오에서 “지금 경제 상황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기다릴 수 있겠느냐”며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예산을 조정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황 대표 역시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해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1주일 내 지급하라”고 압박했다.
국회 소집 가능한데…전문가들은 이 같은 여야의 주장에 대해 반헌법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 76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은 천재지변 또는 경제상 위기 시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발동 가능하다.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금융실명제 시행을 위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했을 때도 위헌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실명제 특성상 재산 은닉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긴급성이 인정됐다. 또 일부 정치권과 재계의 반발로 국회 통과가 어려웠던 상황도 고려됐다.
하지만 코로나지원금의 경우는 다르다. 여야 모두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국회 소집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김민호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총선 이후 지급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여야가 선거에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기 위해 긴급재정명령권을 들고나온 것”이라며 “헌법 이념의 본질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날 긴급재정경제명령권 요구와 관련해 “국회에 신속하게 추경안을 제출해 심의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이날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 출연해 “국회가 멀쩡히 살아있고 더군다나 총선까지 치르고 있어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전 국민에게 코로나지원금을 지원하는 방안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통합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을 비난해 왔던 우리 당의 (황교안) 대표가 전 국민에게 50만원씩 주자고 나왔다”며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돈으로 국민의 표를 매수하는 악성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무리 급해도 원칙을 세워 한정된 재원을 사용해야 한다”며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소득 하위 50%에 지원하는) 기획재정부의 원안으로 여야 모두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 긴급재정경제명령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 위기에서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행사하는 법률적 효력을 지닌 명령. 헌법 제76조가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명령권을 발동한 뒤에는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해 승인받아야 한다.
조미현/고은이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