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사의 부채비율이 올 연말께 수천%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하늘길이 꽉 막힌 탓이다. 지난해 ‘NO 재팬’(일본 안 가기) 운동으로 타격을 받았던 항공사들은 최근엔 ‘버티기’ 전략마저 한계에 몰리자 사람을 줄이고 사업 밑천인 비행기까지 내다팔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길어지면 저비용항공사(LCC)는 물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항공기도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비행기 못 떠도 리스료만 연 1.5조원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선 여객 수는 41만5736명으로,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인 올해 1월(530만4006명)과 비교하면 92% 급감했다. 국제선 가동률이 종전의 8% 수준에 그쳤다는 뜻이다. 운항이 중단되면서 수입이 뚝 끊어졌지만 돈을 갚아야 할 날짜는 꼬박꼬박 돌아온다. 대한항공은 총부채 22조원 가운데 만기가 1년을 넘는 비유동부채 규모가 15조원가량 된다. 평균 만기가 약 3년이라고 본다면 매달 약 4000억원가량의 자금을 갚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들어와야 할 돈은 들어오지 않고, 부채는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항공사 현금 흐름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날지 못하는 비행기라도 대여료는 내야 한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대형항공사(FSC)는 지난해 비행기 운용 리스료로 각각 3600억원, 5100억원 등 8700억원을 냈다. 제주항공 등 LCC까지 더하면 9개 국내 항공사가 올해 납부해야 하는 비행기 리스료는 총 1조5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선 “두세 달 버티기도 힘들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올 연말께 대형 항공사는 부채비율이 2000% 수준, LCC는 부채비율이 4000~5000%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총 4000대 규모 비행기를 운영하는 미국 항공사들이 코로나19로 250억달러(약 30조원)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며 “한국 항공사들이 400대가량의 비행기를 돌리는 것을 감안하면 3조원가량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유 항공기가 167대인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1조원 이상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자본금은 줄어들고 부채는 그만큼 늘어난다면 부채 비율은 순식간에 1500%를 넘어설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이 2조원 넘게 유상증자를 하기로 했지만, 딜이 깨지고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자본잠식 상태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부채비율 상승 시 회사채 상환 등 압박항공사의 부채비율이 수천% 수준으로 올라가면 기존 회사채나 항공권 판매수익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조기상환 조건이 발동될 수 있다. 대한항공이 지난 2월 발행한 회사채는 부채비율 1500%를 조기상환 발동 조건으로 삼고 있다. 시장은 이미 얼어붙었다. 대한항공이 지난달 30일 찍어낸 ABS(6000억원)는 발행만 됐을 뿐 매수자가 없어 90%가량을 발행 주관을 맡은 산업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다. 아예 비행기를 정리하는 항공사도 있다. 최근 비행기 두 대를 예정 기한보다 2개월 먼저 리스업체에 반납한 이스타항공은 비행기 21대를 13대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항공협회는 이날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 추가 지원책을 요청하는 ‘항공산업 생존을 위한 호소문’을 보냈다. 협회는 “국적 항공사가 보유한 비행기 374대 중 324대가 멈춰 서 있다”며 “유·무급 휴직, 자발적 급여 반납 등으로 모두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자구책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정부에 △전체 항공사에 대한 무담보 저리대출 △채권 발행 시 정부의 지급 보증 △항공기 재산세 면제 등을 요청했다.
이선아/이상은/김진성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