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지구촌 전역을 흔들고 있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한 초·중·고 개학은 또 연기됐고, 기업들은 여전히 재택근무 체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비즈니스는 물론 일상을 많이 바꿔 놓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 시즌2’의 개막이 그중 하나다.
‘저녁이 있는 삶 시즌1’의 시나리오는 상당히 괜찮았다. 관련 법규로 프레임을 짜고 근로자의 공감대와 함께 나아갔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장시간 근로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주 5일 근무가 현실화했다. 근로 여건 개선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근로자의 휴식권이 보장되고, 일과 삶의 균형이 실현됐다. 일자리가 창출되고 생산성도 향상되는 선순환 구조를 그렸다. 그럼에도 아직은 미완성 단계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시즌2’를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선 근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다 바뀌는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원격근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로자들의 인식과 습관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살 없는 감옥이 되고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24시간 편의점’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환경이 나쁘지 않다. 클라우드 컴퓨터 환경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방식으로 근무할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 직원들은 이런 환경에 최적화된 요원들이기도 하다.
한 스타트업 기업을 자문한 적이 있다. 50여 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사무실도 없이 미국, 한국 등 몇 개 국가에 직원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래도 회사는 돌아갔고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 마인드가 달랐다. 우리의 ‘그라운드 룰’도 바꿀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고 시도 때도 없이 상황 보고를 시키는 전통적인 방식은 개악이 될 뿐이다. 일과 결과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성과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 대면 근무와 원격 근무의 팀 구조를 어떻게 셋업할지 고민할 부분이다. 당연히 업무 자체도 단순 반복되는 일 중심에서 가급적 협업 및 미션과 프로젝트 중심으로 재정비돼야 한다.
직원들도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통제받는 근로자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일하는 컨설턴트라는 마인드로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도입하기 전에 불필요하고 낡은 일이나 프로세스를 먼저 버려야 한다. 일과 삶의 시공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진정한 삶의 질과 직무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직무의 생산성은 따라올 것이다. 재택이나 원격 근무를 단순한 직원 복지 프로그램의 틀 속에 가두지 말자.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주제는 정부, 기업, 근로자 모두의 관심사다. 역설적이지만 직원들 삶의 질과 직무 만족도가 높아지면 그 수혜는 기업과 정부에도 돌아갈 것이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과 ‘저녁이 있는 삶’ 두 마리 토끼를 이번에는 꼭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준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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