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회사 오너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폭락장을 가업 승계를 위한 주식 증여 기회로 삼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저가 매수 기회인 데다 절세 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서다.
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미성년자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거나 현금을 증여해 주식을 매수하도록 하는 상장사 오너가 늘고 있다.
지난달 30일 샘표그룹 4세 경영자인 박용학 상무의 두 자녀는 샘표 주식 1만195주를 장내 매수했다. 박 상무가 자녀에게 현금을 증여하고, 자녀들이 이 현금으로 주식을 샀다. 샘표는 3월 한 달간 13.20% 떨어졌다. 25일에는 양성아 조광페인트 대표의 조카인 홍모군(14)과 홍모양(12)이 각각 9603주, 9265주를 장내 매수했다. 조광페인트 주가는 3월 들어 25일까지 24.18% 빠졌다. 현재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에 현금을 증여해 주식을 사도록 한 사례들이다.
자녀 등 일가에게 직접 주식을 증여한 사례도 있다. 지난달 17일 이순종 쎄미시스코 대표는 두 자녀에게 4만 주를 증여했다. 12일엔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이 자신의 (주)동서 지분 19.29% 중 0.25%(25만 주)를 두 아들에게 물려줬다. 파트론, 스맥, 혜인, 센트랄모텍 등도 지난달 오너나 주요 주주 일가 간 증여가 이뤄진 대표적 상장사다.
증여할 주식이 많으면 주식을 직접 증여하는 게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다. 김석수 회장이 두 아들에게 증여한 25만 주의 당시 평가액은 약 39억원이었다. 두 아들이 현금 39억원을 받아 똑같이 25만 주를 샀더라면 주식 흐름과 상관없이 증여세만 약 15억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폭락장에서 주식을 직접 증여하면 증여세를 줄일 수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증여일을 기준으로 앞·뒤 2개월, 4개월간의 종가를 평균해 주식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상장 주식은 증여한 다음 2개월간 주가 추이를 보고 증여를 취소할 수도 있다. 주가 흐름에 따라 증여세 절감 효과가 줄어들면 언제라도 다른 시기를 저울질할 수 있다. 한 대형 로펌 상속 전문 변호사는 “경영권 승계를 준비 중인 기업들로선 이번 폭락장이 주식 증여에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2월 중순부터 폭락장이 본격화한 만큼 4월 중순부터 증여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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