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뿐 아니라 채권시장도 패닉에 빠졌다. 외국인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국채선물을 대량 매도하면서 단 하루 만에 3조원이 넘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일부 자금은 국고채 현물시장으로 유입됐지만 상당수는 외환시장을 거쳐 국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채선물시장에서 ‘패닉 셀’이 이어지면서 현물시장에서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0.15%포인트 가까이 폭등하는 등 하루 종일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한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내놓고 있는 양적완화(QE) 정책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다음주쯤에야 이 같은 패닉 장세가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국인, 국채선물 대량 매도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년 국채선물은 76틱(매매 단위) 하락한 110.55에 장을 마쳤다. 10년 국채선물도 183틱 떨어진 129.87에 마감했다. 이날 국채선물 급락은 외국인의 대량 매도가 이끌었다. 외국인은 이날 하루에만 3년 국채선물과 10년 국채선물을 각각 2만827계약, 8161계약 순매도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3조원이 넘는다. 이달 들어 외국인이 국채선물시장에서 순매수한 날은 지난 5일과 18일 단 이틀에 불과했다.
국채선물 가격이 급락하면서 국고채 현물시장에서도 금리가 급등(채권 가격 급락)하는 등 불안이 확산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0.143%포인트 급등하면서 연 1.193%로 올라섰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단숨에 연 1.6%대까지 치솟았다. 외국인은 현물시장에서는 6000억원어치 국고채를 순매수했지만 시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 펀드매니저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달러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신흥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시장 금리가 일제히 급등했다”며 “그동안 원화 채권은 그나마 잘 버텨왔지만 환율이 급등하면서 점점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18일(현지시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0.113% 상승한 연 1.195%에 마감했고 독일과 영국에서도 국채 10년물 금리 상승폭이 모두 0.2%포인트에 달했다.
나라별로 금리 반등의 원인이 서로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박승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은 중앙은행(Fed)의 공격적인 통화 완화 정책이 오히려 채권 매수세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독일은 금리 인하보다 재정 확대 정책으로 갈 것이란 기대 탓에 상승 폭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감염자가 크게 늘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은 사실상 신흥국 채권과 동일한 수준의 위험자산으로 인식되면서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도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많지 않고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다른 신흥국들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시장 불안 내주까지 이어질 듯”
이 같은 채권시장 불안은 다음주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돌이켜보면 미국 기업어음(CP) 3개월물 금리가 2008년 9월 연 2.85%였다가 한 달 뒤 약 두 배인 연 4.72%까지 오른 뒤 이후 11월께 연 2.8%대로 내려오면서 채권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바 있다”며 “이번에도 미국 CP 금리가 지난 9일 연 0.81%에서 18일 연 1.41%까지 상승한 만큼 연 1.6%대까지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각국 통화당국이 당시 경험을 되살려 CP·국채 매입이나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는 만큼 이들 정책이 시장에 반영되는 다음주께 시장 불안이 다소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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