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과 법인파산 건수가 전년과 전월 대비 모두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가 본격 반영되기 전부터 수도권과 창원을 비롯한 부울경(부산·울산·경남)지역을 중심으로 가계과 기업에 심각한 경제 한파가 불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인사이동과 코로나19에 따른 휴정기에도 불구하고 지난달부터 급증한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월 전월比 증가 개인회생·파산 8년만에 최고치
15일 대법원이 주광덕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달 전국 14개 법원에 3741건의 개인 파산이 접수됐다. 지난해 2월보다 19.2% 늘어난 수치다.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지난해 12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법인 파산 신청도 지난 달 80건이 이뤄져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6% 증가했다. 파산으로 가기 전 단계에 신청하는 회생 접수 규모도 오름세다. 지난달 개인회생(7387건)과 법인회생(66건)은 각각 9.9%, 6.4%증가했다.
법조계에서는 지난 2월 파산·회생 신청 건수가 이례적으로 1월보다 늘어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2월에는 법원 정기 인사 이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신청자가 줄어든다. 파산·회생신청을 하는 법률대리인(변호사)이 담당 판사가 바뀌는 2월 인사시기에는 사건 접수를 꺼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행정처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 2월 24일 전국 법원에 휴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법인회생의 경우 전월 대비 20% 급증했다. 개인파산(14.2%), 법인파산(12,6%), 개인회생(6.9%) 모두 전월대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전월 대비 증가율(매년 2월)만으로는 법인회생은 6년만에, 개인회생·파산은 8년만에 최고치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올해는 설 연휴가 예년과 달리 1월 하순에 있었기 때문에 2월 신청 건수가 상대적으로 늘어보였을 수가 있지만 단순히 명절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가 아닌 것 같다”며 “지역 경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휴직·실업자늘어 회생·파산신청 급증할 듯
회생·파산 전문가에 따르면 지역 경기한파나 코로나19로 일할 기회를 상실한 음식·숙박·소매업체 단기 근로자나 소상공인 및 영세 자영업자들이 개인회생·파산 신청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회생을 신청해 법원으로부터 개시명령이나 압류금지명령을 받으면 금융기관의 빚 독촉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보통 신청부터 개시명령이나 압류금지명령까지는 수개월이 걸린다.
한 파산전문 변호사는 “무급 휴직자 중에 빚을 갚지 못해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는 수요가 상당하다”며 “음식·숙박·소매업종에서 일자리를 잃고 개인파산 신청을 고민하는 저신용층 중년 가장들도 많다”고 전했다. 보통 빚이 많은 실업자라 하더라도 재취업에 성공해 소득이 있을 경우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재취업에도 실패해 빚을 갚는 것이 불가능해질 경우 개인파산을 신청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월 29일부터 지난 12일까지 고용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기 위해 휴업·휴직 조치 계획 신고를 한 사업장은 1만2183곳으로 집계됐다. 휴업·휴직 대상 노동자는 11만105명에 달했다. 하루평균 3400여명씩 휴업·휴직하고 있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근로자의 실직·이직에 따른 고용보험 상실자는 지난달 56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만3000명(22.5%) 급증했다.
◆위기몰린 수도권·부울경 기업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자동차, 조선업종 등의 위기가 가계로 전이된 것도 개인회생·파산 급증의 배경이다. 지난달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동월보다 26.4% 줄어든 18만9235대를 기록했다. 2월 기준으로는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이후 21년만에 최저 수준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의 평균 공장 가동률은 50~70%에 불과하다. 때문에 자동차부품업체들이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부울경지역 상당수 일자리를 책임지던 조선산업 역시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3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18척)로 지난 1월(87만CGT·33척)에 비해 66% 줄었다.
실제 개인 파산·회생 접수가 전월대비 가장 늘어난 곳은 성동조선해양의 관할법원인 창원지법이었다. 창원지법은 2월 개인파산(330건)과 개인회생(488건) 접수가 각각 21.3%, 25.7% 급증했다. 전년 동월대비로도 창원지법 개인파산은 36.4%, 개인회생은 22% 급증했다. 한 지방법원 파산부 판사는 “성동조선이 무너지면서 창원지역내 조선기자재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 작년엔 이 지역 법인파산이 급증했다”며 “이 여파가 올해 개별 근로자 가정으로 이어지면서 개인파산과 회생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국에서 법인회생·파산이 전월대비 눈에 띄게 늘어난 곳은 32.5%증가해 53건을 기록한 서울회생법원을 비롯, 인천지법(2건→7건), 전주지법(4건→8건) 등이었다. 전년 동월대비로는 수원지법(16건→28건), 부산·청주지법(2건→8건), 인천지법(4건→7건) 등이었다. 이종석 삼일회계법인 상무는 “수도권과 부울경지역의 제조업 단지에서 법인 회생·파산 신청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며 “앞으로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외식·유통·운송·여객분야에서 구조조정 매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회생법원의 경우 ‘호텔엔조이’로 유명한 숙박예약업체 메이트아이가 지난달 회생을 신청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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