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탄생 250주년에 가려져 있지만 올해는 구스타프 말러(사진)의 탄생 160주년(1860~1911)이기도 하다. 말러는 생전에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베토벤이 살아 있을 때부터 받은 찬사와 숭배를 말러는 누리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말러의 예언은 그의 사후 100주년인 1960년을 기점으로 서양 음악계에서 현실이 됐다. 1960년대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말러 열풍은 좀처럼 수그러질 줄 모른다.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말러의 음악은 오늘날 클래식 연주회장에서 베토벤의 관현악 못지않은 위상에 올랐다. 풍부한 소리와 서사, 깊이를 갖춘 그의 곡들은 짙은 풍미에 울림이 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말러는 소리로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로, 편성 악기가 많을 뿐 아니라 소리의 조합이 무궁무진하다”며 “실황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공연장에서 그 매력은 배가 된다”고 평했다.
클래식 음악계가 말러의 탄생 160주년을 놓칠 리 없다. 다양한 기념 공연을 열어 그를 기린다. 오는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에서 열리는 ‘말러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8일부터 17일까지 열흘간 세계적인 교향악단들이 말러 교향곡 1~9번과 미완성인 10번, 교향악적 가곡 ‘대지의 노래’까지 매일 차례로 연주한다. 얍 판 즈베덴이 이끄는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1번과 2번으로 막을 올린다. 정명훈은 주최 측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와 함께 3번과 9번을 들려준다. 키릴 페트렌코의 베를린필하모닉이 4번과 6번을,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빈필하모닉은 5번과 7번을 들려준다. 다니엘 하딩이 이끄는 말러유스오케스트라의 8번 연주를 거쳐 이반 피셔가 지휘하는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10번과 ‘대지의 노래’로 페스티벌의 막을 내린다.
국내 오케스트라들도 다양한 ‘말러’를 연주한다.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 지난달 14~15일 취임 연주회에서 들려준 곡도 말러 2번 ‘부활’이었다. 지난달 28일 KBS교향악단이 정기연주회를 통해 디르크 카프탄의 지휘로 선보이려 했던 1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취소됐다.
‘말러리안(말러 애호가)’들의 아쉬움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달래줄 예정이다. 박영민이 이끄는 부천필은 5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대지의 노래’를 연주한다. 메조소프라노 헤르미네 하젤뵈크와 테너 김재형이 무대에 오른다. 11월 27일 정기연주회에서는 8번 ‘천인교향곡’을 연주한다. 소프라노 박미자 조선형 이해연, 알토 이아경 양송미, 테너 김재형, 바리톤 양준모 등과 부천·수원·고양·원주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이 출연한다. 2015년부터 이어온 말러 시리즈의 마지막 무대다. 박영민 부천필 음악감독은 “말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며 “부천필이 말러 교향곡 전곡을 다시 한번 완주하는 뜻깊은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필은 임헌정의 지휘로 1999~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선보여 ‘말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홍석원 음악감독이 이끄는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말러를 선보인다. 지난해 6월 취임 무대에서 말러 1번 ‘거인’을 들려줬던 홍 감독은 10월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경필 가을음악회에서 5번을 연주한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7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4번, 11월 13일엔 3번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한 ‘말러 시리즈’를 이어간다. 4번 연주는 소프라노 캐슬린 김, 3번 연주는 메조소프라노 안나 라르손이 함께한다. 전곡 연주에 100분이 걸리는 3번은 말러 교향곡 중 연주시간이 가장 긴 작품이다. 6악장에 걸쳐 천지창조 전 혼란스러운 세계부터 영원한 사랑, 우주의 만물과 광대한 세계까지 방대한 주제를 다룬 대곡이다. 이 곡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로도 들을 수 있다. 7월 18일과 19일 경기도문화의전당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지난해 경기 고양아람누리음악당에서 말러 4번으로 소프라노 엘사 드레이지의 아시아 데뷔 무대를 함께한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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