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악재가 터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오일 전쟁'을 선언한 겁니다. 이들은 지난 2016년부터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해 감산 등에 협력하면서 유가를 방어해왔는데, 지난 주 6일 추가 감산 논의가 러시아의 반대로 깨졌습니다. 이에 사우디는 즉각 무차별 증산을 선언했습니다.
벌써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그리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번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유가 폭락이 안그래도 '코로나 공포'에 휩싸인 국제 금융시장에 위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의 재정난이 깊어지고, 이들이 발행한 엄청난 양의 정크본드 롤오버(재발행)이 어려워질 경우 미국 하이일드 시장에서부터 유동성 위기가 터질 수 있습니다.
미 중앙은행(Fed)은 다음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합니다. 시장에서는 0.75%포인트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제로금리로 곧바로 갈 것이란 분석까지 나옵니다.
지난주 온건 성향의 보스턴연방은행의 에릭 로젠그린 총재가 "Fed가 매입할 수 있는 자산을 확대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관측은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Fed가 제로금리 이후 양적완화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추정이지요.
한경TV와의 인터뷰 내용을 올립니다.
질문1> 미국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상륙하면서 월가에 공포가 확산되는 분위기라고요?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뉴욕 증시를 덮친 상황인데요. 이는 주요 지수에서 잘 드러납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다우 지수는 모두 1000포인트 이상 등락하는 등 요동쳤습니다. 또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를 보면 월~목요일 그나마 30선에 머물렀는데 금요일 49까지 올라갔습니다.
증시에선 지난 주 월요일 다우지수가 1200포인트가 넘게 오르는 등 반등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뉴욕 채권시장에서는 반등도 없습니다. 12거래일 연속으로 금리가 하락해 지난 6일 10년물은 0.66%, 2년물은 0.39%까지 거래됐습니다. 10년물이 올 초 1.9%에 달했다는 걸 떠올리면 현기증나게 추락한 겁니다.
이는 미국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궤를 같이 합니다. 감염자는 오늘 오전까지 470명으로 늘었습니다. 32개주에서 환자가 나타났고 LA, 시애틀, 뉴욕 등 관문도시에 이어 오레건주까지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특히 뉴욕주에서 총 105명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월가는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JP모간, 씨티 등 금융사들은 'BCP'라고 불리는 ‘업무연속성계획’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인력을 3개조로 나눠 본사와 임시 사무실, 재택근무 등으로 운영하는 겁니다. 임시사무실이나 재택근무하는 인력은 시스템적으로 위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포지션을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포지션 정리로 인해 지난주 뉴욕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당초 월가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아시아 수준에서 확산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글로벌 경기가 V자 반등하는 걸 기본 시나리오로 설정해왔습니다. 과거 메르스, 사스 때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지금부터는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이 공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주 블랙록의 마이크 파일 수석투자전략가를 만났는데, 그는 "중국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정말 코로나바이러스를 제압하고 회복하는 것이라면 다른 나라들의 모범사례로서 희망이 있지만, 만약 재발사태가 벌어지든지 한다면 사태는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2> 상황이 이렇다보니, Fed가 지난주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긴급 금리인하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라고요?
Fed가 전격적으로 금리를 내린 게 지난 3일이었는데요. 이게 만족스러웠다면 채권 시장이 안정됐겠지요.
하지만 이후에도 채권 금리는 계속 급락해 지난 금요일 10년물 금리가 0.66%, 2년물은 0.398%까지 폭락했습니다.
현재 기준금리가 1~1.25%이고, 기준금리를 추종하는 2년물 금리가 0.4~0.5% 수준이란 걸 감안하면 시장은 적어도 0.75%포인트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투자자들은 3월 FOMC에서 0.50%포인트 인하에 8.5%, 0.75%포인트 인하에 91.5% 확률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사실 10년물 금리가 0.6~0.7%인데, 내린 기준금리가 그보다 높다면 인하할 의미가 없는 것이죠.
JP모간의 경우 Fed가 오는 18일 0.25%포인트를 인하하든지, 그 이상 내리려한다면 아예 바로 제로금리로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준금리를 0.25~0.5% 식으로 놔둬봐야 별 효과도 없고, 시장은 추가로 더 내리라고 요구할테니 단번에 제로금리로 가고 이제부터는 양적완화에 의존할 것이란 관측이지요.
Fed도 이를 준비하는 듯 합니다. 지난 6일 보스턴연방은행의 에릭 로젠그렌 총재는 "Fed가 매입할 수 있는 자산의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적완화를 할 때 지금은 국채, 모기지 채권만 살 수 있는데 이를 다른 자산, 즉 회사채나 주식 등으로 넓혀야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미 의회가 Fed 법을 바꿔야합니다.
사실 그의 주장은 합리적인 면이 있습니다. Fed는 물가 안정, 고용 확대라는 두 가지 임무를 지키기 위해 통화정책을 쓰고 있는데요. 이번 사태가 심화된다면 위기는 하이일드 등 크레딧 시장에서부터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신용이 좋지 않은 기업부터 무너지면서 회사채 시장이 마비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지난주 Fed가 급하게 금리를 0.5%포인트 내린 건 증시 때문이 아니라, 하이일드 시장에서 발행이 마비되자 유동성 위기가 생길 가능성을 막기위해 내린 조치였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해고를 해야할 것이고, 그건 모기지를 가진 개인들이 이자를 갚지못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모기지 시장의 위기로 번지게되죠.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회사채, 모기지 등을 다 사들여야하는 것입니다.
로젠그린 총재의 말을 되짚어보면 결국 “Fed는 제로금리 이후 양적완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추정이 많습니다.
질문3> 이번 주에 눈여겨봐야할 부분도 짚어주시죠.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어떻게 될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에서의 확산 상황이 매우 중요하겠지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7개국(G7)이 공조를 약속한 상황인데요. 이번 주 각국에서 여러 정책이 나올 겁니다. 이 중 12일 열리는 유럽중앙은행의 정책결정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내릴 지 관심이 쏠립니다.
또 이번 주는 오는 17~18일 3월 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한 주 앞둔 주입니다. 채권 매니저들이 ‘Fed가 바로 제로금리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국채 금리는 더 내려갈 수 있습니다.
경제 지표로는 소비자 물가와 중소기업 낙관지수,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가 발표됩니다. 다만 투자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 교란을 감안해 지표에 매달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 눈여겨볼 것이 국제 유가의 움직임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러시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그날 유가가 10% 폭락했는데요.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차별 증산을 선언했습니다. 감산으로 유가를 지탱하기보다 기름을 쏟아내 경쟁자들을 쓰러트리겠다는 전략입니다. 벌써 유럽, 아시아 구매자들에게 배럴당 8~10달러씩 할인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돕니다.
이는 감산합의를 거절한 러시아를 1차적으로 겨냥한 조치로 보이는데요.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그리고 러시아의 푸틴대통령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이번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원유 수요가 급감하는데 나온 소식이어서 충격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가 2016년 1월처럼 20달러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는 미국의 셰일오일 업자 등 에너지 기업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들이 발행한 막대한 양의 하이일드 채권을 디폴트로 몰 수 있습니다. Fed가 두려워하는 유동성위기가 여기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