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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과의 사투' 국가권력 개입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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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53분 티파니모텔 203호 입실, 오전 9시 티파니모텔 퇴실, 오후 6시48분 대박집 식당 입장, 8시59분 톰플러스모텔 302호 입실….’

서울 은평구 블로그에 게시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경로다. 8일 7000명을 넘어선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감염 사실 확인 전 며칠간의 행적이 공개되고 있다. 익명 처리돼 있지만 당사자의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아는 주변인들은 누군지 모를 리 없다. 불륜 사실이 들통나는 이도 있고, “이럴 때 조심성 없이 돌아다녔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범죄인의 사생활도 이렇게 함부로 다루진 않는다”(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는 말이 틀리지 않다.

확진자 발표의 통과의례가 된 이동경로 확인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만 해도 불법이었다. 이후 관련 법 개정으로 지금은 질병관리본부가 카드 결제내역까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감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처능력은 여러 경험을 거치며 강해진다. 그리고 강한 대처능력은 상당 부분 시장과 개인 등 민간의 자유를 줄이고 공공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전염병과 인류의 기나긴 투쟁을 돌이켜보면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일은 흔히 있었다. 페스트가 유행하던 14세기 이탈리아 밀라노는 “누군가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가족 전체를 집 안에 가두고 굶어 죽기를 기다렸다. 페스트에 따른 인구 손실은 지역에 따라 80~90%에 이르렀지만 밀라노는 15%의 시민만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2020년의 한국은 14세기 이탈리아가 아니다. 전염병 차단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민간이 생산하는 재화인 마스크를 조달청을 통해 납품하도록 하고 기업에 조달청과의 계약을 압박하고 있다. 긴급성을 감안할 때 이해되는 점도 있지만, 민간의 생산 역량 확대를 유도하는 일본과 대비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종교 집회를 금지하는 긴급명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학자들은 “전쟁 등으로 국회 소집이 불가능할 때 대통령도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긴급명령권”이라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그만두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확산 앞에 모든 지혜를 짜내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 권한 확대를 어디까지 용인할지는 다른 문제다. 풀려난 공권력은 감염병 차단 후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유로운 일상의 모습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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