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폭발물을 찾아라.’ 경제 위기를 불러올지 모를 폭발물이 도처에 널렸다. 어디선가 폭발물이 터지면 장밋빛 전망이 한 순간 잿빛으로 돌변하는 상황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감염병 유행과 관련해 가장 최근에 전망을 내놓은 것은 ‘2018 세계경제 대전망’에서다. 이코노미스트는 서부 아프리카 에볼라, 남미의 지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경우처럼 감염병은 놀라운 빈도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코노미스트는 오늘날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그 발생을 파악하고 대응할 능력이 없는 국가에서 시작된다면, 급속도로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딱 2년 후 중국발(發) 코로나19가 현실이 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글로벌 리스크 리포트 2018’을 통해 ‘만약 일어난다면 경제에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불확실한 사건 또는 상황’을 적시한 바 있다. 여기에는 ‘광범위한 사망과 경제적 혼란을 초래하는 감염병의 통제되지 않는 확산’도 포함됐다. WEF은 ‘감염병 확산’을 ‘금융 위기’, ‘재정 위기’와 비교해 ‘발생 가능성(likelihood)’은 낮지만 ‘영향력(impact)’은 더 크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있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2017년 신종 감염병으로 대표되는 ‘보건안보’ 문제를 한국적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글로벌 트렌드 이슈 중 하나로 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감염병은 국가적인 중요도와 기술적 해결 가능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이슈 그룹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기회는 또 있었다. STEPI는 2018년 영향력이 큰 동시에 예측하기 어려워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은 미래 이슈로 변종 바이러스를 도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무슨 영문인지 ‘한국에서 10년 이내 발생할 미래 사건’에서 변종 바이러스는 빠졌다.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려면 개별 국가의 노력과 국가간 공조, 국제기구와의 협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렇다고 해도 개방경제로 대외 의존도가 특히 높은 한국 경제로서는 감염병을 파급력 측면에서 ‘X이벤트’(자연이나 인간에 의해 유발되는, 발생 가능성은 매우 작으나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닌 사건)에 버금가는 이슈로 간주해야 마땅하다. 감염병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등 X이벤트보다 발생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추세이고 보면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우려로 한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나라가 12개국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감염병 리스크가 현실이 될 경우 이런 파괴적인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전혀 몰랐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예측(forecasting)’을 해도 무시하거나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불행히도 ‘예방’은 없고 눈 앞의 표에 사로잡힌 ‘정치’만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표 계산기만 쳐다보고 있는데 위험 예측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전성기에 이른 뒤 빠른 속도로 붕괴한 문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예측이 주는, 미래에 벌어질 경고 따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미래를 꿰뚫어 보는 ‘포사이트(foresight)’가 결여된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편향, 즉 ‘현재 중시 편향’으로 치닫는 것은 ‘국가 리더십’, ‘정치 리더십’의 실종과도 같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 경제는 ‘포용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등 검증되지 않은 이념들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했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용어를 빌리더라도, ‘시스템-1 사고법’에서 나오는 무모하고 반사적인 정책만 판칠 뿐, 뇌에 부담을 많이 준다는 ‘시스템-2 사고법’을 요구하는 신중하고 합리적인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그 결과, 곳곳이 근시안에 갇혀 똑 같이 나눠 먹자거나 더 많이 달라는 투쟁판이 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 동시 추락이 이상할 것도 없다.
정책이 글로벌 흐름과 엇박자로 질주하는 가운데 지난해 미·중 충돌이 경제를 덮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가 더해졌다. 사람의 이동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규제 속에서도 기업들이 온라인, 모바일, 비대면 시장을 개척해 놓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나.
아찔한 사건들이 반복되다 보면 대내외 경제분석기관들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전망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토로하는 상황이 곧 닥칠지 모른다. 정부는 ‘정책 실패’까지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조차 냉정히 돌아보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생존을 위한 사전 대응과 위기관리 능력에서 정부는 기업보다 더 깨어 있어야 한다. 가능성은 낮지만 현실화되면 큰 충격을 주는 리스크에 대비하지 못하는 경제, 한 부분이 충격을 받으면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마는 경제, 글로벌 혁신 흐름과 따로 놀다가 홀로 뒤처지는 경제는 지속되기 어렵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경제가 되지 않으려면, 정부는 신호가 올 때 놓치지 않고 포착해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변화에 쉼 없이 적응해 나가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 경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19 확산 앞에 우리는 지금 어떤가. 뭐가 ‘신호(signal)’이고 뭐가 ‘잡음(noise)’인지 정부는 제대로 분간해내고 있는지부터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웬만한 나라는 다 한다는 원격의료를 법으로 금지해오다가 긴급사태가 터지면 병원내 감염을 막기 위한 긴급조치의 일환으로 한시적으로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또 어떤가. 여·야 집권 때를 비교할 필요도 없이 국가의 허술한 보건안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누가 정권을 잡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불신이 계속 쌓이면 어찌 되겠나. ‘복잡계’ 관점에서 보면 경제가 한 방에 훅 가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정치와 함께 말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