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가 지배했던 유튜브 골프 콘텐츠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TV를 주무대로 삼던 개그맨 등 연예인들이 오락성 강한 ‘유튜브 예능골프’를 선보이면서다. 개그맨 김구라(50)와 박준형(47) 등 스타급 개그맨들이 잇달아 유튜브 채널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귀족 스포츠’로 불리던 골프가 대중화에 접어들면서 골프 예능이 하나의 장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2010년대 초반 200만 명을 갓 넘겼던 골프 인구는 어느새 700만 명(대한골프협회 2018)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구라, 박준형 등 ‘개골퍼’ 인기몰이
레슨 위주의 기존 골프 콘텐츠 시장은 티칭 프로들이 시작해 투어프로, 인기 미디어 프로들까지 가세하면서 포화 상태가 됐다. 번외 영상이 업로드되지만 중심은 항상 레슨이었다. 정보 홍수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소비자도 늘어났다.
반면 ‘골프 예능’은 타수 줄이기 팁 등 ‘정보 전달’에 힘을 주지 않는다. 대신 중독성 강한 웃음코드를 내세워 빠르게 골프 콘텐츠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김구라가 올초 시작한 ‘김구라의 뻐꾸기 골프 TV’가 대표적이다. ‘구력 30년의 백돌이’라는 골프 실력을 공개하는 등 단 여섯 편의 영상물로 누적 조회 수 134만 회를 넘겼다. 골프 유튜브계에선 ‘1만 조회 수만 나와도 성공’이란 공식이 통한다. 한때 국내 최장신 농구선수였던 하승진(35)과의 골프 대결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키 221㎝의 하승진이 어떤 골프 클럽을 쓰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클릭 수’가 폭발했다. 지난달 시작한 김구라의 뻐꾸기 골프 TV는 두 달 만에 구독자 2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개그맨 홍인규(40)는 ‘편당 손쉽게 30만 회’라는 말을 듣는 ‘파워 유튜버’다. 구독자가 6만 명이 넘는다. 에이미 조(구독자 28만 명), 심짱(17만 명) 등과 함께 인기 유튜버로 자주 꼽힌다. 동료 개그맨들과의 ‘골프 대결’이 주된 콘텐츠다. 출연하는 동료들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홍인규 골프TV를 구독하는 한 주말 골퍼는 “추천 영상에 떠 우연히 봤는데 콘텐츠가 정말 재밌었다”며 “최근 골프에 빠졌는데 평소 알던 개그맨들의 ‘핸디캡’을 아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자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갈갈이’ 캐릭터로 유명해진 박준형의 ‘스크린골프쇼’는 토크쇼를 방불케 한다. 지난해부터 스크린골프 전문채널 ‘골프존 TV’에 방영되고 골프존 공식 유튜브 채널에도 게재되고 있다. 스크린골프장에서 여러 패널과 함께 늘어놓는 왁자한 ‘골프 수다’가 인기다.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등의 히트곡을 남긴 가수 조정현(56)도 지난해 골프 전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서 팬들을 다시 찾았다. 그는 구력 30년에 최고 5언더파까지 쳐본 아마 고수. 조정현은 “평소 골프를 좋아했고 즐겁고 유익하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전달하려고 채널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고진영·최나연 등 LPGA 챔프도 가세
골프 콘텐츠의 예능화 현상은 현직 투어 프로들의 가세에서도 나타난다. 시즌을 뛰는 현역 투어프로의 유튜브 활동은 경기력 저하 등을 이유로 ‘금기’로 여겨졌다. 지난해 9월 ‘고진영고진영고’ 채널을 연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은 ‘소프트 콘텐츠’를 내세워 이를 피해 갔다. 레슨이나 ‘꿀팁’ 없이 일상을 전하는 게 대부분이다. 평소 알지 못한 필드 밖 표정과 뒷얘기가 담겨 있어 반응이 좋다. 최근 구독자 수 1만 명을 돌파했다. ‘레전드’ 최나연(33)도 골프 채널을 개설해 운영 중이고, 유소연(30)도 골프 전문 유튜브 채널을 조만간 개설할 계획이다.
이런 현상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한 골프전문채널 관계자는 “유명인들의 골프 콘텐츠 시장 진출은 골프 인구를 늘릴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이미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의 진출이 줄줄이 이어지면 기존 티칭프로와 제작자들이 만든 정통 콘텐츠가 소외되기 쉽다. 공생할 수 있는 길부터 먼저 모색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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